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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후보가 몰락하는 까닭

기사승인 2017.07.20  14: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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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평론 겉과속

▲사진 : 뉴시스

1. 제보조작은 ‘새 정치’의 피조물

국민의당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12일 제보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계은퇴 여부를 집요하게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끝내 답을 하지 않았다.

정치는 일단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떠나기 힘든 곳이다. 게다가 그는 두 번의 대선에서 한때 당선이 유력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더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철수 전 의원은 정계은퇴 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날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시중에서 ‘대통령선거에서 안철수가 당선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무엇을 더 추구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녹음파일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대선 패배로 가뜩이나 곤궁한 처지에 있던 안철수 전 의원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세상이 곧이곧대로 믿어주진 않지만 국민의당은 조작한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관련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재기를 꿈꾸던 그들은 원통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조작사건은 관련된 자가 어디까지건 특정인의 범죄행위로 그칠 수는 없다. 또한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전 의원에게는 이미 재기 불능한 결점으로 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는 오직 당선만을 목적으로 우왕좌왕, 갈팡질팡하였다. 국민의당은 촛불혁명의 뜻을 받들려는 생각은 없고 1위 후보를 깎아내리는 일에 골몰하였다.

안철수 후보도 그 유명한 TV토론에서 네거티브 소재로 네거티브를 하는 등 이 일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핵심인사들은 적폐집단과 손을 잡을 기회를 잡지 못해 안달이었다. 적폐청산은 처음부터 외면하였고, 정치를 시작할 때 내세웠던 ‘새 정치’도 온데 간데 없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보조작, 그 어설픈 녹음파일을 가지고 상대후보 공격에 올인한 정당…. 이것은 선거 막판에 이르자 당선 이외에는 다른 목적이 남아있지 않았던 안철수식 정치가 만들어낸 피조물이다.

그래서 안철수 전 의원이 제보조작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안철수 전 의원의 정치적 몰락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따로 있다.

2. ‘제3후보’의 등장과 퇴장

87년 6월항쟁 이후의 역대 대통령선거에서는 거의 매번 제3의 인물이 등장하곤 했다. 1992년의 14대 대통령선거 때 정주영이 등장했고, 16대 선거 때는 정몽준이 등장했다. 2007년의 17대 대선에서는 문국현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통령선거에서 이렇게 제3의 후보가 등장하는 이유를 흔히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더 깊이 있게 분석하면 대중들이 자신의 뜻과 이해관계가 제대로 구현되는 나라, 즉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갈망이 표현된 것이다.

물론 제3의 후보는 대중의 지향이 변형되고 왜곡되어 나타난 결과다. 왜곡과 변형이 생기는 이유는 지배집단의 억압이나 법적, 제도적 제약 때문이며, 대중운동이 아직 응당한 높이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등장하는 제3의 인물은 대중의 지향이 변형 왜곡된 것인 만큼 당사자들의 운명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2002년 대선 때 제3의 인물이었던 정몽준은 후보단일화에서 져서 본선에 나가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선거 전날 밤 만취상태의 지지철회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새 정부에서 지분마저 다 날려버리고 말았다.

2007년의 대선에서 등장한 문국현 후보는 나름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비록 대선에는 아쉬운 득표에 그쳤지만 어느 정도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진 선거에서 실착을 거듭하였고 급격히 몰락하여 이제는 그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에 비하면 한 번의 대권도전이 실패하자 단호하게 정치에 미련을 버린 정주영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물론 그는 경쟁자였던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후 상당한 정치보복을 받아야 했다.

안철수 전 의원은 드물게 18대와 19대 두 번에 걸쳐 제3의 인물 역할을 한 사람이다. 2012년 대선 때는 여론조사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로 점쳐지기도 했다. 올해 대선에서도 한때 1위를 다투기도 했다.

앞서 등장했던 제3의 후보들은 선거 때 일회용 후보로 쓰이고 난 뒤 곧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안철수 전 의원은 두 번의 대선과 또 몇 번의 국회의원, 지방선거를 거치는 동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까닭은 새로운 나라를 지향하는 대중들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 힘이 2017년에는 국정농단 집단에게서 정권을 박탈하기에 이르렀으니 달리 말할 필요도 없다. 그 힘이 있었기에 안철수라는 정치초년생 백면서생이 무려 5년 넘게 유력 정치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 성장하는 대중의 힘, 이것은 정치인 안철수의 몰락을 불러온 원인이기도 하다. 몰락의 씨앗은 자신이 표방한 ‘새 정치’가 대중들의 지지를 모아온다고 착각할 때 뿌려졌다.

물론 그의 ‘새 정치’는 국가를 경영하고 시대를 헤쳐 나가기에도 턱없이 부실하였다. 그마저도 정치를 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더욱 애매모호해지고 스스로 내세운 규범과 가치기준도 붕괴되었다.

하지만 몰락의 원인은 ‘새 정치’ 자체의 문제보다 안철수 전 의원의 착각에 있었다.

안철수 전 의원은 그의 ‘새 정치’가 대중을 불러 모은 것이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하는 시대의 힘이 ‘새 정치’를 대안으로 삼아보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자신이 제일 옳다’는 아집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게다가 그는 지난 5년 동안 대중운동이 놀랍게 성장하였다는 사실을 다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대중들이 제3의 후보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단계를 뛰어넘어 직접 권력을 통제하고 쥐려한다는 변화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는 이번 대선이 단순한 조기선거가 아니라 적폐집단을 척결하는 정권교체라는 사실을 외면하였다. 이러다보니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적폐집단의 호감을 얻어 보려는 행보를 하였다. 그러나 민심은 이런 후보에게 제3의 인물 역할을 계속 맡길 이유가 없었다.

대선에서 당락여부를 떠나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이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려면 적폐청산을 문재인 후보나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내세우고 추진했어야 했다. 이것이 대중들이 제3의 인물에게 부여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적폐청산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며 게걸음을 걸었다. 대선이후에는 적폐잔당인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과 정치적 제휴를 통해 얻은 지분으로 살길을 도모하기에 급급하였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제3의 인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안철수의 초라한 퇴장은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제보조작 사건은 그의 퇴장을 위한 극적 장치(Dramatic Device)라 하는 것이 오히려 적당할 것이다.

대중의 요구와 지향을 담아내지 못하는 제3의 인물은 한때 아무리 높은 인기를 누렸어도 곧 대중의 버림을 받는다.

안철수 전 의원은 대중운동 발전의 득을 봐서 여러 번에 걸쳐 제3의 인물 역할을 배정받는 행운을 누렸지만 결국 몰락의 길을 피하지 못하였다.

이것을 정치의 잔혹함, 민심의 변덕이라고 탓할 수 없다. 대중의 뜻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부족함과 과오를 탓해야 할 것이다.

3. 촛불혁명시대에 맞는 정치의 탄생

새로운 인물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제3의 후보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 국민이 직접 권력을 통제하고 자기 손에 쥐려는 촛불혁명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륜과 수완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정치에서 촛불혁명이 지향하는 바에서 별로 어긋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누리는 것이다.

물론 정권에게는 기분 좋은 지지만이 아니라 엄청난 압박이기도 하다. 이것이 촛불혁명시대의 정치다.

대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려는 시대, 흔히 이를 일컬어 직접민주주의의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단순히 민주주의 제도나 방식을 변화 발전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의 놀라운 정치적 각성과 거대한 정치적 진출이 어우러져 있는 이 변화는 정치제도와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를 뛰어넘는 지향을 가지고 있다.

이 촛불혁명의 시대에는 마땅히 대중 자신이 주인인 정치조직, 정당이 등장해야 한다.

대중들은 새로운 인물, 제3의 후보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허망한 짓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표방하는 정권교체, 그리고 그 집권여당에 기대어 입지를 넓혀보려는 정치도 대중의 신임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중주체의 정당, 이것은 나라다운 나라, 당당한 정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정치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불패의 무기다.

따라서 우여곡절과 간난신고를 겪어온 진보정당운동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이 길을 개척하는 데 나선 것은 백번 옳은 일이다. 모쪼록 촛불혁명의 지향과 요구를 한시도 잊지 말고 흐트러짐 없이 매진하여 기초를 잘 다지기를 기원한다.

촛불혁명에 나선 대중들이 자기가 직접 자신의 지향을 실현해 나가는 정치, 대중이 주인인 정당을 요구할 준엄한 날이 멀지 않았다.

안호국 시사평론가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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