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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민족이란?

기사승인 2017.07.27  13: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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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를 창립하는 이유

나는 잘 몰랐다. ‘자고로(?) 민족이란’ 피부처럼 자연스러운 우리의 일부여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적극적으로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민족적 감수성’을 언제 느끼느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궁색했다. ‘축구 한일전에서 느끼는 흥분?’ 좀 더 산뜻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마땅한 사례가 생각나지 않았다. 서구에서 공부한 교수님들이 <민족주의>라는 말만 나오면 파시즘을 대하듯 손사래를 치는 것을 볼 때 ‘민족주의를 서구의 잣대로 보면 안 된다’고 반박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공기처럼, 피부처럼 ‘우리’로 존재하는 내 자의식의 일부였지 별도로 공들이고 가꾸어 생각해볼 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를 적지 않게 당황하게 하는 노래가 있다. 북한 영화 <월미도>에 나오는 노래 ‘나는 알았네’를 들을 때마다, 우선 이 노래의 가사는 나에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 

▲ 영화 '월미도' [사진 유튜브 영상 갈무리]

"봄이면 사과 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가을엔 황금 이삭 물결치는 곳.
아- 내 고향 푸른들 한줌의 흙이 목숨보다 귀중한 줄 나는 알았네.
불타는 전호 가에 노을이 비껴오면 가슴에 못 잊어서 그려보는 곳.
살아도 그 품속에 죽어도 그 품속에 언제나 사무치게 불러보는 곳.
아~ 어머니라 부르는 나의 조국이."

이 노래에서는 고향이 목숨이고, 민족이고, 조국이다. 실제 영화 주인공 소녀는 월미도에서 죽음을 각오한 일대 결전을 기다리면서 <‘고향의 푸른 들 한줌의 흙’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노래한다. 조국이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실체, 다가서면 만져질듯 한 존재다. 이보다 더 생생하게 조국의 표상을 그려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내가 열패감을 느끼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고향은커녕 기억하는 동네조차 없다. 들꽃 피는 언덕이 둘도 없는 조국이라고 했는데 시골여행을 다닐 때 아름다운 풍광을 봐도 그런 정취와 구체적 인연도 없어(?) 시구 한절 떠오르지 않는다. 나에게 간절하게 지켜야할 그 무엇의 표상은 무엇일까? 나에게 조국은 어떤 구체성으로 존재하는지 늘 분명하지 않은 안개 속 같이 느껴졌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얼마 전에 영화 ‘박열’을 보면서 더 진전시킬 수 있었다. 아나키스트인 박열과 그의 연인 후미코가 일본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으면서도 만세를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사형선고 앞에서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만행에 짓눌리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을 얻은 승리감을 자축한다.

‘속박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자유주의자’를 연상한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이 억압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제국주의적 탄압에 도망가지 않고 저항하는지는 의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저항하였더라도 사형선고 같은 엄청난 탄압 앞에서 기뻐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의 본질은 <개인 이기주의>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들은 자기를 구속하는 작은 억압에는 반대하면서도 정작 손해를 감수할 수도 없기 때문에 늘 결정적 순간에 힘의 논리에 편승한다. 제국주의의 탄압은 싫지만 항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박열은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면서 계급적 질서와 이념을 부정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이면은 자유주의가 아닌 그 무엇이 있었다. 

▲ 도쿄 시절의 박열. 오른쪽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사진. [박열의사기념관 홈페이지] 

박열이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은 그저 속박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족쇄를 거부하고 고향을, 동지들을, 민족을 사랑하는 자유를 추구한다. 굴종을 택하느니 목숨을 바쳐 자신을 주장할 권리, 사랑할 권리를 요구한다. 박열은 옥중 결혼을 한 후미코의 시신을 자신의 고향, 문경에 묻어달라고 한다. 이념으로서 아나키스트일지언정 그의 영혼은 결국 고향과 민족으로 향한다. 사형을 선고받은 양심수 박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그의 마지막 주검에 대한 유언은 그의 지향이 무엇이었는가를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박열은 아나키스트로서 투쟁했지만, 사실 그를 움직인 동력은 민족적 울분과 항거였다. 그는 감형되어 22년 만에 출감하는데 바로 재일조선인 거류민단 초대 단장으로서 활동한다. 사회주의자이든, 아나키스트이든 민족을 떠난 진보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이념도 말로만 습득되는 것이 아니듯 <민족주의자>, <민족애>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적 탄압이 아무리 작렬해도 그에 맞서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나> 그리고 <우리>에 대한 <자존감>의 영역의 차이가 아닐까? 우리민족은 ‘나’라는 주어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주어로 쓰는 습성이 있다. 그만큼 ‘나’와 ‘우리’가 불가분의 하나로 얽혀 있다. 인력거꾼 박열에게 일본인이 정당한 비용을 주지 않고 인력거 비용을 내라고 매달리는 그를 짓밟을 때 만일 개인주의에 찌든 사람이라면 자기 비하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인에게 그토록 악착같이 대들 수 있었던 것은 자기 개인에 대한 탄압이 아닌 민족에 대한 탄압으로 일치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이런 일치의 노력, 평상시에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가족과 친지, 이웃과 자신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일치감... 그리고 우리는 쪽발이들한테 무시당할 민족이 아니라는 자존감... 이런 평상시의 노력들이 박열을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자주적 민족관>은 그것을 키우고 지키려는 평상시의 노력의 결과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민족관을 제대로 세우자”라고 하면 무슨 <꼴통 보수우익>을 바라보듯 하는데, 조국의 진정한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지 정권을 잡은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독재찬양을 <조국애, 민족애> 따위의 말로 가리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민족관을 제대로 세우는 주체>는 우리이며, 실제로 그것을 제대로 세우기 위한 운동을 벌려 나가야 한다. 저들처럼 무조건 저들의 정권에 충성하자는 구호가 아닌 ‘구체적인 역사인식, 민족문화를 현대적 정서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우리 민족의 자화상에 대한 연구와 통찰...> 이런 노력들이 다변화되고 서로 상승작용을 발휘 하는 것... 

영화 월미도 노래 <나는 알았네>에서 시작된 조국과 민족에 대한 구체적 표상의 고민은 결국 평상시 공동체를, 민족을 절절히 사랑하고 자신과 일치시키려는 노력 속에서만 얻어진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나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오늘 새롭게 ‘남북역사문화교류’를 창립한다. 우리민족의 자화상을 재발견하고, 그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 노력... 이제 천천히 한걸음씩 내딛어볼 생각이다.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집행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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