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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운동이란? 민족의 자화상 찾기

기사승인 2017.08.10  15: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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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경의 역사이야기] 민족의 자화상

우리는 아침마다 거울을 본다. 외모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얼굴을 들여다보며 잠깐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일종의 습관화된 가벼운 자기 성찰이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자의식은 이럴 때만 확인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삼아 성격 테스트를 하고, 자신을 보는 주변 시선을 궁금해 한다. 그런데 이런 자의식 못지않게 나를 규정하는 중요한 의식이 있다.

우리는 평상시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외로 모든 개별 인간은 집안의 전통, 지역과 공동체의 가치체계, 민족적 혈통 등과 뗄 수 없는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를 이루는 근본 요소이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정서, 생활습성, 사고방식이 다른 민족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일상에서 쉽게 확인한다. 이를테면 외국영화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흥행에 성공하는 편이 아니라든지, 일일이 예를 들지 못할 정도로 여기저기 널려있는 우리민족의 전통과 정서, 습성을 만나게 된다. 민족적인 것을 떠나서 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우리는 사실 생각보다 자주, 민족성을 거론하는 습성이 있다. 어디서든 셋만 모이면 모임을 만드는 습성? 활을 잘 쏘는 민족? 가무에 능한 민족? 하여튼 우리민족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와 규정은 많은데, 막상 그것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특성, 민족의 자화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가 없는 듯하다. 민속학자들의 세시풍속에 대한 연구 등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말하는 민족의 자화상은 우리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표상이다.

내가 속한 우리 공동체, 우리민족의 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 민족만의 특징? 개성? 늘 궁금한 화두였다. 민족문제를 공부하게 되면서 처음 들은 헷갈림은 우리가 북방민족이라는 주장이었다. 북방과 남방의 혼합 민족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우랄알타이어>군에 속한다고 배운 기억이 나서 도대체 우랄알타이어가 어딘지, 지도에서 한참을 찾아보기도 했다. 재야 사학자들은 우리가 유목민족이라고 주장한다. 말을 타고 만주를 달리던 고구려의 기상이 유목민족의 특징이라나? (이런 주장들은 공부를 하면서 황당한 주장임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의 뿌리에 대한 궁금증, 우리 민족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정말 하나의 민족일까? 맑시즘에서는 ‘민족이란 서구 부르주아 혁명으로 탄생한 근대 국가의 산물’이라는데, 단일 민족이라는 것을 어떻게 논증하나? 논증이 가능하기는 하나?

민족문제에 대한 궁금증에 정수일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무렵 ‘민족문제를 주장하는 건 폐쇄주의’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으면서 반박할 논거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정교수님이 말하는 문명교류는 사실상 ‘우리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에 넘친 민족문제 강의’였다. 교수님은 우리민족이 다른 민족에 대해서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을 뿐 더러,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민족이라고 하셨다. 우리 성씨의 몇 프로가 이민족으로부터 왔다고도 하셨다. 중국에서 정치적 지형에 변동이 생길 때 우리나라로 이민 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 고려 때는 그런 분들에게 살 터전도 마련해주고 여러 가지 호혜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었다니 참 관대한 민족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라 괘릉을 지키는 신하의 조각상이 서양인 얼굴이라는 것도 가르쳐 주셨다. 서양인이 왕을 지키는 최고의 신하 반열에 오른 것만 보아도 우리의 이민족에 대한 대우가 어땠겠느냐는 말씀이었다. 그 강의를 들으며 우리민족에 대한 뿌듯한 자긍심이 생겼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정수일 교수님의 강의는 민족문제의 본질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단일민족의 혈통을 유지하면서 발전해온 민족이지, 다민족으로 구성된 민족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일민족 이라는 말을 늘 쓰면서도 실제로 우리가 단일민족인지, 어떤지의 여부는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여러 민족의 유민들을 활발하게 받아들였으면서도 단일민족이라는 혈통을 유지할 수 있나? 교수님은 성씨 중 많은 부분이 고려 때 들어왔다고 하셨는데, 중국인 몇 백 명이 내려왔다손 치더라도 전체 인구수에 비해서 지극히 미미한 숫자이다. 또 두세대만 거쳐도 우리민족으로 동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다민족으로 구성된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특히 고려시절 중국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이주민들은 외래 민족 이라기보다는 주로 발해 멸망 후, 다시 민족의 품을 찾아 들어온 동포들이었다. 그러므로 개방적으로 다민족을 포용하면서도 찬란한 문명을 만들고 교류하였다는 이야기는 개방적인 우리민족의 단면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규정은 아니다. 우리민족이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어떻게 단일성을 보존하고, 근본 특성이 무엇이며 우리가 이룩한 독특하고 찬란한 문화는 우리의 민족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단일민족. 우리민족의 자화상이 궁금하다. 나라는 존재, 자의식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나를 규정하는 실질적인 공동체,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본질과 특징을 알고 싶다. 내 얼굴은 거울을 보면 보이지만, 우리민족의 자화상은 어디 가서 확인할 수 있을까? 역사를 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역사란, 우리민족이 자기를 구현하고, 발전시켜온 자취니까...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발전시켜온 여정이다. 또 주변 다른 민족들의 이합집산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단일성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 담겨있다.

주변 분들이 이런 말을 한다. ‘현실의 문제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역사이야기냐? 근대사라면 몰라도, 고대사부터의 역사라니?’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현실의 문제가 심각하므로, 역사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이 좋기만 하다면, 굳이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며, 자기 힘과 능력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힘과 능력에 대한 확신은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과 궤적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자강력에 대한 확신을 역사를 통해 찾아낼 때 구체적이고 현실적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려운 현실을 우리 민족의 힘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얻으려면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하물며 “나”보다 훨씬 더 큰 “나”. 민족적 자존감을 되찾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할 점! 민족적 자존감은 나 혼자 생각한다고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민족이 함께 힘을 합쳐서 만들어가야 하고, 물을 주고, 사랑을 주며, 아끼고 보살펴 더 높은 경지에서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주체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의무가 있다. 그것이 내가 역사공부와 역사운동을 모두에게 제안하는 이유이다.

▲ 작년 봄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백두산에 올랐다. 많은 분들이 백두산을 찾는 이유, 그것도 우리 역사와 민족의 기상을 확인하고픈 마음이다.

김이경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집행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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