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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언 정신까지 왜곡하면 전쟁도 막을 수 없다

기사승인 2017.09.27  14: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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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평론 겉과속 - 2017년 9월 27일

▲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식에서 박수 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1. 분별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6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10·4 남북 정상선언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노무현재단과 통일부, 서울특별시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행사가 10월 4일에 열리지 않고 일주일전에 미리 열린 이유는 10월 4일이 열흘동안의 연휴속에 있기 때문이다. 코앞에 닥쳐있는 전쟁위기보다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것인지를 더 걱정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런 편법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전쟁위기는 어차피 자기 능력이 닿지 않는 일이니 미국이나 중국 또는 러시아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임시공휴일 지정이나 연휴 계획에나 몰두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보편화된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공동선언의 하나인 10.4선언 기념식에서 미국이 강요하고 있는 대북적대정책을 다시 되뇌었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물론 그 행사는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단호하게 압박해야 한다’, ‘북한의 핵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전세계를 상대로 핵으로 맞서려 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할 것이다.’는 발언을 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자리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2. 능력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권보다 대미관계에서 더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대북정책에서는 더 적대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박근혜때보다 휠씬 못하다. 
누군가는 한반도위기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격화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야박한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문재인정부에게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뿐이다. 

벌써 세 번째다. 참으로 뻔질나게 만난다. 유엔총회 참석길에 트럼프를 또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트럼프 : ‘사드 배치는 잘 끝났다면서요?’
문재인 대통령 : ‘중국의 경제 보복 문제가 심각합니다. 미국이 관심을 가져줘야 합니다.’
청와대가 이걸 자랑이라고 홍보까지 하니 달리 할 말이 없다. 

좋은 시절에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때에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촛불혁명시대의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대통령은 상황을 핑계로 대미굴종을 자청하고 있다. 그 정도는 정부수립이후 어느 정권보다 심하다.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정권이 국정농단정권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릇이 되고 역량이 있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난세의 한복판에 놓이면 일을 그르칠 뿐이다. 
물론 민족과 역사는 능력부족을 이유로 그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3. 정신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북측을 향해 ‘10.4 정상선언의 정신으로 돌아오기 바란다.’고 하였다. 그런데 기념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선언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현실은 정상선언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따질 필요도 없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이행되지 못한 것은 이명박․박근혜정권이 공동선언을 준수하기를 거부하고 합의를 파기했기 때문이다. 또한 준수거부와 합의파기는 문재인정부에서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으로 남북이 공동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이명박과 박근혜가 망쳐놓은 일들을 바로 잡는 것부터 해야 했다. 
그러나 전직 인권변호사 대통령은 유인납치의혹이 있는 북측 여성 13명에 대해서조차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유엔총회장에서 ‘북에게 더 강한 제재’를 해야 한다'는 적대적 연설을 한 것은 곧 “남북합의 파기선언”이다. 이명박도 박근혜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았다.
기념식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동선언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핵과 미사일 중단 포기’를 전제 조건으로 걸면서 ‘남과 북이 함께 10.4 정상선언이 여전히 유효함을 선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공동선언의 유효화가 목표인지, 무효화가 목적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공동선언을 준수하고 이행할 의지나 능력이 부족한 것은 탓하지 않겠다. 이 아쉬움은 대한민국의 팔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동선언의 정신을 왜곡하지는 말아야 한다. 남북공동선언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관철하려는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자산이다.

4. 평화

한국전쟁이후 한반도에는 단 하루도 평화로운 날이 없었다. 단지 전쟁위기속에 살고 있는 것을 평화라고 착각하거나 그렇게 위로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전쟁위기가 지금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로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의 도발망언과 전쟁책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평화가 무엇보다 소중하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한다. 
‘북핵의 검증가능한 비가역적인 폐기’ 즉 ‘북핵불용론’이 오늘의 한반도전쟁위기를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다. 이 진실을 외면하는 한 한반도평화는 바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 전쟁위기를 유발하고 있는 당사자 중 하나라고 후대의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북과 미국을 말려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자기 힘이 싸우는 둘을 합친 것보다 강하거나, 최소한 각각과 비슷하기라도 해야 싸움을 말릴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게는 북과 미국에게 조금씩 양보하도록 강제할 힘도 수단도 없다. 서글프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상호양보를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자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겠다는 말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가랑이 밑도 기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세무민하는 궤변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과하지욕(袴下之辱)’의 고사는 비겁과 무능력을 변명하는 소재로 많이 쓰여졌다. 하지만 와신상담의 지혜로 재현된 적은 거의 없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큰 나라의 힘을 무서워하고 그 나라가 일으키려는 전쟁에 공포심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결국은 전쟁을 피할 수 없다. 설령 사대굴종으로 위기를 면한다 해도 더 혹독한 노예로 전락하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 
사타구니 밑을 기는 술수가 아니라 전쟁의 공포에 굴하지 않는 사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북과 미국은 대결의 최종국면에 들어섰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이기건 북이 이기건 온전한 주권을 가진 나라로 되기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자기의 생사존망이 걸린 문제를 남의 나라에 기대어 해결해야 하고, 그 나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긍지와 자부심, 기본권까지 포기하는 생존법... 
대한민국은 70년 넘게 그렇게 살아왔다. 지겹지도 않은가. 

안호국 시사평론가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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