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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꽃핀 북한의 민족무용, 최승희의 후예들

기사승인 2017.10.12  18: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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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예술로 읽다] 북한 무용(4)

▲ 고려극장 [사진=이철주 위원 제공]

최승희의 영향력은 북측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전쟁 기간 중국 활동을 통해 경극 등 중국 무용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재일의 민족무용은 북한 민족무용의 계승과 발전의 전형이 될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는 북한의 해외동포 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사회주의조국 건설 시기를 지나면서 북측은 적극적인 재외동포 정책을 추진하고, 이때 그 선봉에 문화예술이 있었다. 1946년 12월 재일동포들에게 서신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김일성 주석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재외동포 정책은 56년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설립을 통해 구체화되었고, 63년 국적법을 공포해 해외동포를 ‘공민’으로 인정함으로써 법제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북측의 예술단과 관련 전문가들은 전 세계로 나아가 현지 지도와 교류를 통해 북측의 문화예술을 전파했다. 이 노력과 성과는 실제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전후해 비로소 해외동포 사회로 눈을 돌린 남측 정부의 지원과 교류가 있기 전까지 유효했으며, 현지 동포사회에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 고려극장 [사진=이철주 위원 제공]

그 성과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해외동포예술단의 존재이다. 재러 ‘고려인’ 소수예술단을 대표하는 카자흐스탄 소재 국립고려극장(1932년 9월), 재중 ‘조선족’을 대표하여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소수민족예술단인 연변가무단(1946년 3월). 재일 ‘조선적’ 동포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는 북측의 유일한 국립예술단인 동경도 소재 금강산가극단(1955년 6월)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재중과 재일에서의 시작에는 최승희가 있다.

중국에서 최승희가 본격적인 활동을 한 것은 한국전쟁 기간이었다. 1944년 <동방무용연구소>를 개설한 바 있는 최승희는 중국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무용교육기구인 <최승희 무용연구반>을 1951년 북경 중앙연극학원에 개설해 조선춤의 기본과 창작법을 가르쳤고, 중국 고전무용을 연구 정리해 근대화를 견인했다. 

여기 출신인 최미선, 이인순, 안승자, 황옥숙이 무용가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허명월, 이혜숙, 김예화 등이 무용예술의 교육과 창작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가운데 박용원은 1952년 9월 최승희와 함께 북한에 갔다가 1953년 3월 연변으로 돌아와 연변가무단의 민족무용지도원으로, 1957년 7월에는 연변예술학원의 교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또한 박용원은 연변예술학원의 무용강좌장으로 재직하며, 조선인민군협주단 출신의 최금성(조선민족무용)과 최승희무용연구반 출신의 이영애(중국고전무용), 민속(전통) 무용가로 활동하던 하태익과 김용욱(민간무용), 북경무용학원 출신의 이종만(발레무용)과 함께 무용교육의 체계를 마련하였다. 그 근간이 최승희 무용교수체계에 있었다. 최승희 무용연구반 출신의 최미선은 중앙가무단과 동방가무단 등에서 무용가로 활약하며, 세계적인 무용콩쿨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독무가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연목으로 조선족 춤인 장고춤, 희열 등과 북한 춤인 소고춤과 진주, 기쁨(쟁강춤) 등이 있다. 

재중 ‘조선족’ 민족무용이 중국의 사회 환경과 문예정책을 반영하면서, 문화전파란 측면에서서 북측의 무용과 융합과 변용을 거치면서 소수민족무용으로 변화 발전했다면, 재일 ‘조선적’ 민족무용은 북측의 해외공관을 자임하는 총련이란 단일 지도체제 속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계승 발전했다. 

재일 민족무용은 1945년 해방을 전후해 민족의 말과 혼을 지키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민족교육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 시기에는 일본 전역을 돌며 우리의 전통음악과 무용을 선보이며 민족성을 고취해 온 문화선전대와 문화공작대가 활동을 하였다. 당시 재일조선인 대부분이 가입한 ‘조련’에서는 1948년 12월 조련중앙고등학원(예술학원)을 설립해 문공대 지도자를 양성했고, 1955년 6월6일 재일본조선인중앙예술단(구 제1문선대)이 창설된다. 이후 1959년 6월7일 재일본조선문학가예술가동맹이 결성되면서 전국적인 체계를 가지고 활동을 하게 된다.

▲ 금강산 가극단 [사진=이철주 위원 제공]

재일 조선인 무용계가 획기적인 전기를 맞은 것은 세 차례이다. 1959년 12월14일 북측으로의 귀국 길이 열리면서 최승희 창작의 무용소품과 영상물이 전달되었고, 또 니가타 항구에 정박한 선상에서는 북측 전문가들의 직간접적인 강습이 이루어졌다. 이때 전습된 작품이 ‘북춤’, ‘사당춤’, ‘도라지’, ‘벽화의 무희’, ‘검무’ 등이다. 그리고 1964년 동경올림픽에 참석한 북측 대표를 환영하는 이사쿠사국제극장에서의 특별공연에서 민족무용으로서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후 1965년 동경가무단 설립 후 9개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가무단이 설립이 되었다.

“조국(북)의 무용가, 배우들이 많이 와서 가르쳤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배가 왔는데, 도쿄에서 니가타까지 밤에 침대차를 타고 배우러 갔습니다. 무용작품마다 다른 선생님들이 붙어서 집중적으로 지도하며 배가 일주일씩 머물면서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배를 관람한다는 형식으로 허가를 받고 들어갔었습니다. 배 안에서 전수받는 것은 비밀이고 조국에서 배타고 오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도 비밀이었습니다. 일본은 선생님들이 배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지요. 조국의 선생님들은 니가타 항에 도착해도 배에서 내리지도 못했습니다.” 재일조선인 무용계의 개척자이자 대모로 알려진 임추자의 증언이다.

1973년 7월30일부터 9월17일까지 만수대예술단의 일본 공연이 있었다. 대외문화사절단으로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세계 순회공연 중인 만수대예술단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일본인들에게도 “주체의 예술”, “황금의 예술”로 불리며 감탄과 찬사가 이어졌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음악무용종합공연으로 구성된 순회공연은 도쿄, 나고야, 오사카, 히로시마 등 일본 전역에서 60회에 달하는 공연으로 1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때 소개된 무용작품은 4대 명작 무용인 ‘조국의 진달래’, ‘눈이 내린다’, ‘사과풍년’, ‘키춤’을 비롯하여 ‘부채춤’, ‘샘물터에서’, ‘협동벌의 풍년맞이’, ‘3인무’, ‘목동과 처녀’, ‘쟁강춤’, ‘양산도’, ‘농악무’ 등 혁명적이며 민족적 색채가 짙은 대표적 무용작품이었다. 

재일조선중앙예술단과 예술부문 관계자들은 만수대예술단을 50여 일간 수행하면서 각 분야별(성악, 기악, 무용, 미술, 조명, 효과 등)로 여러 부문의 기술을 직접 전수 받게 된다. 동영상으로나 보던 ‘조국’의 예술을 친견한 재일조선인 사회는 뜨겁게 열광했고, 이들을 수행하면서 직접적인 전수가 이루어져서 무용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고 예술적 깊이는 더 해 갔다. 

▲ 금강산 가극단 [사진=이철주 위원 제공]

마침내 중앙예술단을 주축으로 한 재일조선인예술단이 1974년 4월 평양을 방문해 남포항 근처 무대에서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전습 받은 것이 두 번째 전기가 될 것이다.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의 명배우와 창작가들로부터 집중 지도를 받고는, 최종 리허설까지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뜻밖에 무대가 꾸려졌다. 함경도 현지지도 중이던 김일성 주석이 급히 돌아와 직접 공연을 보고 그 성과에 만족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중앙예술단은 1974년 8월29일 <금강산가극단>으로 개명하고 국립해외예술단으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큰 역할을 하였던 북측의 무용가는 주혜덕(1933년생)이다. 니가타 항의 귀국선에서 무용지도를 한 바도 있는 주혜덕은 최승희무용연구소 출신으로 4대 명작인 ‘조국의 진달래’와 ‘눈이 내린다’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무용가이다. 1951년 1월 북경 중앙희극학원 무용연구반 교원으로 재중 민족무용계에도 족적을 남긴 바 있는 주혜덕은 이후에 함경북도예술단의 안무가로, 1986년부터 청진예술학원 무용강좌 교원으로 활동했다. 무용극 <메콩강반의 아침>을 창작 공연해 베트남과 교류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 금강산 가극단 [사진=이철주 위원 제공]

세 번째는 1984년 11월부터 조선학교 학생들의 평양음악무용대학 통신수강 및 연수가 시작된 것이다. 비록 1981년부터 평양 방문 강습이 매년 4차례 이루어졌지만,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무용 강습이 이루진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이후 1987년부터 재일조선학생예술단이 매년 북측의 설맞이 공연에 참가를 하였고, 1991년 2월 ‘2.16예술상’에서 현 금강산가극단의 책임안무가인 강수내 인민예술가가 무용부문에서 재일조선인 무용 역사상 최초로 3위를 수상하면서 재일 조선무용은 정상의 수준에 오르게 된다. 

한편 재일 민족무용은 초기에는 남측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무용가들부터 출발을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은 중앙예술학원 무용과장으로 활동하며, 1955년 동경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한 김장안이다. 문예동 최초의 무용부장으로 있다가 북행을 한 후 황해도예술단 안무가로 활동을 하였다. 오사카 지역에서는 조봉희가 중심이 되었는데, 1954년 고베조선무용연구소를 개설하였고, 1960년 3월에는 총련 문화소조 지도원양성강습회 강사를 역임했다. 그리고 전통춤은 최승희와 함께 일본 현대무용의 아버지라 칭하는 이시이바쿠 문화생 출신으로 남측의 신무용을 개척한 조택원이 칼춤, 초립동, 한산춤 등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로부터 민족무용을 전수받은 김일순, 임추자, 리미남에 이어, 현계광, 강수내 등으로 계승 발전이 되었으며, 현재 고정순, 김영란, 강휘순, 계영순, 김유열, 임수향, 리경희, 박선미, 송정애, 송영숙 등이 그 ‘계주봉’을 있고 있다. 

북측에서는 1996년부터 1998년 사이에 북측의 전무가를 파견해 3차례의 조선무용강습회를 개최해 조선무용기본동작, 조선무용기초동작, 조선민속무용기본동작 전습을 한 바도 있다. 이때 지도원으로 참가한 북측의 무용가는 리인숙(평양무용음악대학), 현은실(파바다가극단), 김은하(조선예술교류협회), 김혜옥(평양민족예술단) 등이다. 현재에도 북측 최고의 무용 권위자들인 김락영, 홍정화, 백환영, 김해춘, 한은화, 백은수, 박용학, 고은화, 오영옥(발레), 최은희(발레) 등이 재일 무용가들에게 작품 안무와 전습을 이어오고 있으며, 단체로는 피바다가극단, 평양무용대학, 평양민족예술단, 만수대예술단 등이 교류와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한편 북측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동경 소재 조선대학교의 박정순 교수에 따르면, 2012년 11월 현재, 금강산가극단 무용부 19명 및 지방가무단 무용부 14명,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 무용부 9개 지역 173명, 여성동맹 무용소조 17개 151명, 초급부 무용소조 47개교 486명, 중급부 무용소조 30개교 301명, 고급무 무용조소 10개교 171명, 조선대학교 무용소조 61명, 전국 18개소의 조선무용연구소의 전문가 33명 및 수강생 508명, 도쿄, 가나가와, 도카이, 오사카, 히로시마 지방의 조선무용단과 민족 무용단 91명 등 총 2천여 명의 무용가 및 무용애호가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우리 동포들은 그 어디에서 살건 자기 민족의 넋을 잃지 말고 민족성을 지키며 조선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김정일 선집에서 밝힌 바처럼, 재중과 재일의 무용계는 북측의 민족무용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현대화 과정 속에서 “조선춤”을 통해서 민족성을 고양하고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그 결과 일찍부터 북측의 민족무용 체계를 받아들여 사회주의 주체예술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민족적 경향이 짙은 민속적 작품의 발굴과 창작, 수용의 측면에서 또 다른 의미의 “신(新) 무용”을 만들어 가고 있는 재중, 재일의 조선무용을 다시금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족문화사적으로 그 성과는 민족의 자산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통일의 시대를 준비하는 민족무용의 전형으로 기록하고 교류하여야 할 것이다. 

비록 형식과 내용이 달라졌어도 장단과 가락, 그리고 그 안에 면면히 이어져 오는 호흡이 ‘하나’라면 여기서 통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조선무용예술 1번수’라 명명한 최승희의 후예들로 대를 이어 민족무용을 지켜온 이들이 소중하고 살가운 이유이다.  

              
연변가무단 건단 70돐 경축공연 <장백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tJoEArXpPLk

금강산가극단 결단 40돐 특별공연 <감사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19SIqXn3LXE

‘2.16예술상’을 수상한 금강산가극단 단원들

https://www.youtube.com/watch?v=G8VoSG4BZ7Q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webmaster@minplus.or.kr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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