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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보다 못난 한국정치

기사승인 2017.10.18  09: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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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평론 겉과속 - 2017년 10월 18일

1. 한국인의 위기해결법

미국은 10월16일부터 한반도 해역에서 B-1B 스텔스 폭격기와 핵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 전단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시작하였다.

세상이 다 알고 있듯이 이 훈련은 그냥 하는 군사연습이 아니다. 첨단무력을 대규모로 동원하여 ‘DPRKoera을 실제로 위협하겠다’는 것이다.

미군은 이 군사훈련에 군사암호만 붙이고 공개적인 명칭을 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여차하면 이 길로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뜻도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군사도발로 인해 한반도위기가 전쟁직전에 도달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북과 미국 어느 한쪽이라도 삐끗하면 곧바로 충돌이 일어나고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외국의 어느 누가 ‘미국이 북과 대화를 하려고 한다’고 말하면 큰 뉴스거리가 된다. 그 사람이 한반도와 북미관계, 백악관의 속사정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는 관계없다.

또 미국의 어떤 자가 ‘트럼프는 군사대결을 하지 말고 북과 협상을 하라’고 주장하면 대문짝만한 기사가 된다. 그가 트럼프행정부에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북한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북미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으려 고 애를 쓴다.

사태는 명백히 대결로 치닫고 있는데도 근거도 없는 주장과 희망사항을 섞어 ‘결국은 협상으로 갈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데서 더 심하다.

물론 트럼프가 벌이고 있는 이른바 ‘군사적 압박’은 협박공갈이다. 실력 없이 허세만 부리는 허장성세라는 것도 비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이런 망동에 위험성이 없는 것을 결코 아니다.

북미대결이 첨예한 국면에 들어섰고, 한반도정세가 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군사도발행위를 하는 것은 화약에 불을 지고 들어서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이것이 무모한 허장성세이므로 예기치 않은 충돌을 유발할 위험이 더 크다.

트럼프의 망동이 불러오는 전쟁발발위험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아직도 북을 군사력으로 어떻게 해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예측이 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반도정세의 구성원, 북미대결에 영향을 가져야 하는 주체가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는 것을 무책임한 자세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 정세분석에 기대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기 신세를 정당화하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미국 걱정이 아니라 제나라 걱정을 한다면 무엇보다 전쟁발발 위험성을 경고하고 미국에게 군사도발을 멈출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정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쟁위기가 극에 달할수록 이를 외면하려는 몸부림이 요동친다. 군통수권도 없고, 외교력도 제대로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위기가 닥칠때마다 ‘위기를 외면하는’ 위기해결법에 매달린다. 그러나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것인가.

2. 백성 없는 논쟁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남한산성’은 돌이켜 생각하는 바가 많다. 영화가 중심줄거리로 다루었던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의 논쟁은 병자호란을 말할 때 흔히 등장하는 논란거리다.

논란의 어느편에 서는가와 관계없이 최명길의 처신은 떳떳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명나라를 배신하고, 폐모살제의 패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를 내세워 광해에게서 왕위를 찬탈하는 능양군 이종의 쿠데타에 가담한 핵심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광해가 ‘동생을 죽였으므로 왕의 자격이 없다’는 인조반정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 주장이다. 만약 그렇다면 태종 이방원과 세조 이유를 먼저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 명분은 ‘명나라를 배신하였다’는 것이었다.

최명길은 ‘명나라를 섬기지 않는 왕을 폐하는’ 반역을 감행한 주역이었으니, 남한산성에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오랑캐 청과 싸우기’를 주장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인조반정때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였다. 많은 말을 했으나 최명길의 관심과 목적은 반정때나 남한산성에서나 자신들, 사대부들의 자리를 보전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논쟁의 반대편에 있었던 김상헌은 비록 인조반정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수혜자였다. 그러므로 ‘명을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는 일관성은 지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끝까지 항전하자’고 한 이유는 나라의 주권이나 백성을 지키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에 대한 신하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항전의 이유였다.

이처럼 영화에서 가상으로 등장한 김상헌의 대사와 달리 그 또한 사대부가 지배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에서 최명길과 다르지 않다.

김상헌은 이후 영의정에 제수되기도 했고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추존되었다. 몰락해가는 봉건왕조를 변칙적으로 유지하며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가로막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김상헌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이를 확인시켜준다.

남한산성은 천혜의 요새라 할만하다. 당시의 군사기술로서 쉽게 함락시킬 수 있는 성이 아니었다. 특히 성을 공격하는 데 능하지 못한 청나라군대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다르게 실제로 청나라 군대는 남한산성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물론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고 군대의 수가 적었으며 각지에서 올라오던 근왕병들이 연이어 패퇴하였다. 형세는 매우 어려웠으나 가장 어려운 것은 조선왕 인조에게 청나라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광해에 대한 콤플렉스와 복수심에 불타 왕권을 찬탈한 능양군 인조에게는 자기의 왕권 보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따라서 그가 삼전도에 나가 삼궤구고두례를 한 것은 못할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청나라 황제가 요구했다면 아홉 번이 아니라 아흔아홉 번이라도 머리를 찧었을지 모른다.

최명길과 김상헌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두패로 갈리워 40일이 넘도록 격한 논쟁을 벌였으나 그 자리에는 사대부와 왕실의 안위가 있었을뿐 나라의 운명과 백성의 안위는 없었다.

한달반에 걸쳐 벌인 사대부들의 논쟁이 후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넋나간 국빈대접

미합중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가 11월7일 대한민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전쟁위기속에 밀어넣어놓고 있는 주인공으로서 참 뻔뻔스러운 짓이다. 상식이 있는 자라면 맞아죽을까봐 감히 올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정부와 언론은 ‘25년만의 미국대통령 국빈방문’이라고 소란을 피우며 귀하고 귀한 손님을 맞이할 채비에 분주하다.

트럼프는 국제사회에서 혐오의 상징, 기피인물로 되어있다. 미국내에서는 최근의 여론조사 지지도 24%가 말해주듯 박근혜말기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고 있다.

이런 그를 이렇듯 열렬히 반겨주는 곳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넋나간 국빈대접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국회는 트럼프를 모시기 위해 국정감사까지 중단할 거라고 한다.

여야 대표들이 얼마전 청와대에 모여 대북제재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한미동맹에 충성을 맹세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하는가.

미국의 위세에 눌려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종으로 살기를 자처하는데서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당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나올 말이 걱정되어 해야 할 말을 다 못하는 데서는 진보정당이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는 사람들은 사대주의자들의 너절한 행각에 한숨을 쉬고 혀를 차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은 남한산성의 벼슬아치들이 보여준 모습에 비하여 떳떳하고 자랑스러울게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남한산성의 논쟁은 명과 청 누구를 상전으로 모셔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는 자기나라를 전쟁터로 만들겠다는 주범을 극진히 모시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때는 선비인양 하며 가식적으로라도 위신을 지키려 하고 자결하려는 만용이라도 있었다. 지금 한국정치에는 트럼프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고 그곳을 핥는 자들만 가득하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정당들에게 미국에 맞설 용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라사이의 관계에서 계산을 똑바로 하고, 외교에서의 초보적인 상식이라도 지켰으면 좋겠다.

제발 진보정당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하기를 바란다.

‘트럼프의 국빈방문에 환호하는 정부와 국회’… 정녕 이 나라의 국민인 것을 이렇게 수치스럽게 만들 것인가.  

안호국 시사평론가 webmaster@minplus.or.kr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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