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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기사승인 2017.12.17  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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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부산서 열린 고 이민호군 추모 촛불문화제서 폭로된 현장실습 피해실태

지난 16일 저녁 부산시 서면 하트 동상 근처에서 청년 민중당 부산시당 주최로 <故 이민호군 추모 및 청소년 노동보호법 제정을 위한 부산지역 특성화고생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청년 민중당 부산시당은 지난 12, 13일 부산 시내 37개 특성화고 가운데 28개 학교 인근에 촛불문화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부착하고, 또 22개 학교 앞에서 1인 시위 및 홍보물을 배포했다. 홍보물의 내용은 <현장실습 제도개선>, <청소년 노동보호법 제정>, <12월16일 촛불문화제>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집회의 첫 발언은 부산 청소년 겨레하나 소속 전지환 학생이 했다. “현장실습이 뭔데 죽어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벌려고 그 과정에서 현장실습에 간 건데, 세상은 별거 없이 합의금 몇 푼 던져주고, 벌금 몇 푼 내고, 그런 식으로 끝나는 게 말이 되나. 이대로라면 현장실습 나가는 청소년들이 앞으로도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는 곧 졸업하지만, 청소년 후배들, 동생들을 위해서 안전한 진로를 마련할 수 있도록, 그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노력하도록 하겠다.”  

다음으로 부산대학교 학생인 장태원씨와 김명신씨의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장태원씨는 공연에 앞서 “한 생명이 안타깝게 죽었다. 고 이민호 군 사건은 뉴스 등에 보도되어서 크게 알려졌지만, 더 많은 청소년이 잘못된 제도 속에서 보이지 않게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고쳐나가기 위해서 분노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곤 공연을 했다. 노래한 곡은 조국과 청춘의 ‘내 눈물에 고인 하늘’과 이소라의 ‘track 8’이었다. 

부산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는 김성훈씨는 “청소년의 노동환경이 정말 열악하다, 이는 청년이 되고 나서 사회에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노동하다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정말 많이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다 끼어 숨지신 분, 코레일 1호선에서 선로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돌아가신 분 등 정말 많다. 통계를 보면 하루 7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는다. 1년이면 2400명인데 회사는 안전장비를 구비 안 하는 것은 물론이요, 법령을 어겨가면서도 사람이 죽어도 눈 하나 꿈쩍 안 한다. 같은 원인의 사고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된다. 바뀌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쥐어 짜낼 수 있을까를 가르친다. 노동이 조금이라도 존중받는 사회였다면 이런 죽음들은 없었을 것이다. 청소년의 노동은 한번 쓰고 버리는 값싸게 여겨도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막론하고 노동의 가치는 인정되어야 한다”며 청소년 노동보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음으로 특성화고 학생을 동생으로 둔 청년 민중당 당원의 발언이 있었다. 아래는 발언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년민중당 대학생 당원입니다. 처음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고 이 모 군의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제 동생이 생각났습니다. 저에게는 이군과 똑같이 특성화고를 나왔고 현장실습을 하고 청년노동자가 된 두 살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제 동생은 초등학생부터 컴퓨터를 스스로 고치기도 하고 기계를 잘 다뤘습니다. 꿈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중학생이 돼서 집이 무척 힘들어지자 얼른 취직해야겠다며 집에 빨리 도움 되고 싶은 마음에 특성화고에 진학했었습니다. 다행히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습니다. 타지에서 일하면서 분명 힘들고 외롭고 그랬을 텐데도 거기서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번 돈 대부분을 적금에 붓고 부모님이 사는 집이 춥지는 않을까, 덥지는 않을까 자기가 힘들게 번 돈은 자기를 위해서 보다 오롯이 부모님을 위해 효도하던 동생이었습니다. 

이모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제 동생처럼 착한 학생, 아들이 많이 생각이 났었습니다. 가끔 집에 오던 동생에게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원래 회사생활이란 게 힘든 거다. 그래도 아무 말 말고 말 잘 들어야 한다. 원래 그런 거다…."라고요. 

현장실습을 떠나는 수많은 학생에게 가족들이, 학교가, 사회가 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하는 곳에서 성희롱을 당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위험해도 다 우리는 처음이라는 이유로, 배우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젊다는 이유로 참아야 했고, 말을 잘 들어야 했고, 순응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이렇게 죽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많은 제2의, 제3의 이군이 있는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군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국가가 해라는 데로 다했다. 국가가 세금 내라는 거 다했다. 도대체 국가는 뭘 해줬냐? 왜 아들까지 잡아가냐?” 

너무 화가 났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이건 단순히 특성화고 학생들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건 청소년들은, 청년들은 노예나 개미처럼 대하고 단순히 우리는 젊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버려질 소모품으로 대하는 이 사회 때문에 이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촛불 문화재를 알리는 실천 때 처절히 느꼈습니다. 한 교장이 학교 이미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사건에 대해 설명해 드리려고 하자,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고 교장이 말했습니다. 

이 모든 건 이런 일을 허용하고 묵인한 사회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대우받을 이유 없다!’ 돈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한 사회, 함께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이런 죽음이 반복되지 않게 합시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합시다.“ 

밴드 ‘바나나몽키스패너’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준오씨는 “권위주의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이나 그들이 현장실습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시도를 제거하는 것 같다. 어른들은 ‘당연히 그런 거다, 네가 잘못했다’라는 식으로 생각 없이 얘기해 버린다.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느냐? 상대적이고, 성격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고, 온도가 다른데”라고 현실을 비판하며 '누구 없소'와 밴드 곡 'Role-ING'을 공연했다. 

부산 청년 민중당의 한 20대 당원은 “(이군이 일하는)기계 옆에 사람 한 명만 더 붙어 있었어도 살 수 있었다. 주 40시간을 근로한다는 근로계약서는 휴짓조각이었다. 하루 12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저는 졸업을 하면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대를 나왔다. 초등학생들은 직업체험학습이나 미래에 어떤 직업을, 꿈을 가질지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이 과정을 헤쳐 나갈 수 있는지, 그 꿈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위험이나 장애물들은 알려주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이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실습하다가 죽는다. 고등학교에서 살아 나가서 성인이 되면 취업 경쟁이다.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 죽음과 맞닥뜨린다. 이런 사회에서 일하는 한 모든 학생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저의 꿈은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일에는 골든타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구의역, 그리고 이번 실습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라고 현실을 비판했다. 

끝으로 최근 현장실습의 부당대우에 항의, 퇴사한 부산 지역 특성화고 재학생이 발언했다. 아래는 전문이다. 

“추운 날씨에 한자리에 모여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OO전자통신 계열의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고등학교 3년 과정 동안 반장을 하며 징계 한번 없이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해왔습니다. 고 이민호님과 같이 저도 9월11일 소형 가전제품 업체 A사에 취업했습니다. 

손등뼈가 교통사고로 인해 금이 가서 뼈가 갈라지는데도 “아프다” 하면 당장이라도 자를 것 같은 분위기, 그리고 동료들에게 피해가 있을까 봐 참고 일했는데, 회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돈이었습니다. 

한 날은 종이 상자만 높이 쌓여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기어 올라가 자재를 확인하라고 해서 올라갔다가 종이 상자가 찢어져 그대로 떨어지면서 발목이 돌아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장과 이사의 시선에서는 전혀 걱정의 눈빛을 느낄 수 없었고, 버려진 쓰레기를 보는 그런 시선으로 저를 보는 것을 보고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부품이 모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장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주문을 받아서 지시를 내렸고 모든 책임을 우리한테만 나무랐습니다. 남자휴게실이라고는 창고에 낡은 소파 하나 놓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였을 때 “어차피 2주만 더 일 시키고 자를 거였다”, “그만둔다고 해줘서 고맙다”라며 학교,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문제가 있다고 막말을 했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학교도 제가 입사한 지 2주 정도부터 회사가 이상하다고, 마치 일하는 기계 취급만 한다고 알렸음에도 이를 무시했습니다

11월 초부터 학교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였을 때 “학교에 절대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며 저를 막았고, “11월 들어 정시에 퇴근해본 적도 없고 너무 힘들다” 하였을 때 돌아온 답은 “돈 많이 받겠네, 좋겠다”였습니다. 그 당시 여태껏 취업 나갔던 현장 실습생들이 왜 자살을 택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 2명도 저와 함께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학교에 각자 알렸고 학교에서는 다짜고짜 저에게 전화해 “네가 애들을 꾀었나?”라며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통화하다가 울었습니다. 그러자 선생이 “너 지금 뭐 하냐? 이 새X야”라며 욕설을 했습니다. 

한 달가량이 지난 지금도 몇몇 선생님은 저를 하찮은 동네 바보 보듯이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으려고 하자 “진로 부장 선생님께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끝까지 졸업 때까지 다니라는 학교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이런 회사에 1학년, 2학년 후배들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더 필사적으로 회사를 나온 것입니다, 솔직히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게 무섭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가 무서워서 옴츠러들면 되겠나 그래서 이 무대에 올라온 것이고, 후배들이 만약 이런 일을 당한다면 저처럼 불이익이 두려워 외부에 알리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지 않도록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해냅시다. 감사합니다.“ 

집회의 마지막 순서로, 부당한 대우가 일상인 청소년 노동을 깨부수고 청소년 노동보호법 제정을 바라는 의미의 적폐 격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신새벽 담쟁이기자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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