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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택배기사의 ‘내 생애 첫 노조’ 이야기

기사승인 2018.09.03  15: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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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는 믿음직한 가장이 되고 싶었다. 스물여섯 살에 결혼 후 대리운전, 택시기사, 선박 용접공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모두 벌이가 변변치 않았다. 아내와 의논 후 함께 택배 일을 하기로 했다. 

“힘들어서, 힘들게 살아서” 이야기를 하던 그의 시선이 멈춘다.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보다 그의 시선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 듯하다. 힘든 삶을 바꾸고자 택배기사가 된 그가 어쩌다 CJ대한통운에 맞서 싸우는 노조 간부가 되었을까? 
   
#1 흩어지면 노예
올해 마흔여덟 살인 하영대씨는 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 김해지회 부지회장이다. 지난 2013년 2월14일, CJ대한통운 김해 ㅈ대리점 소속으로 택배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일이 밤까지 끝나지 않았다. 집에선 잠만 자고 눈 뜨면 일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일이 숙달되니 동료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주변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택배 일은 혼자만의 일이니깐 주위 사람들을 다 잊어버려. 주변에 사람이 없어.”

개인사업자라는 법적 지위는 택배기사를 ‘개인’으로 흩어지게 했다.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동료들에게 서로 경조사라도 챙기자고 제안했다. 1만 원씩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현장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가끔 나눠 먹을 음료나 떡을 사오는 동료들도 생겼다. 

▲ 택배기사 하영대씨. 택배연대노조 김해지회 부지회장이다.

“대리점 소장 밑에서 노예처럼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게 택배기사더라고…. 아프고 힘든 걸 하소연할 길이 없어.” 

택배기사 3년차, 본사-대리점-택배기사로 연결된 ‘갑-을-병’식 구조에 문제의식이 생겼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택배기사 권리찾기’ 밴드를 발견했다. 가입해서 올라온 글을 쭉 봤다. ‘나하고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마음이구나!’ 주변에 밴드 가입을 권유했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밴드에 가입하면 잘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개인사업자라는 신분도 미지근한 반응에 한몫했다. 

2017월 11월3일, ‘택배연대노동조합’ 설립 신고필증이 발급됐다. 소식을 접하자 합법적으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겼다. 곧장 인터넷으로 노조에 가입했다. 경남에선 1호 조합원이었다. 아내에겐 가입만 하고 나서지 않겠다는 말로 안심시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김해 한 대리점이 배송 건당 공제하는 수수료를 인상했다. 다들 계약서에 서명했는데 3명이 완강히 거부했다. 대리점은 이들을 1월 말까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영대씨는 택배노조에 상황을 알렸다. 

2017년 12월4일, 문제해결을 위해 노조 관계자 2명, 택배기사 4명이 모였다. 4명 중엔 영대씨가 유일한 조합원이었다. 노조원을 늘리고 김해지회를 설립하자고 뜻을 모았다. 몇 명을 가입시킬 거냐는 질문에 영대씨는 호기롭게 15명을 외쳤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며 주변 동료들을 한 명씩 만났다. “내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입에 올려본 적 없는 ‘형님’이라는 말을 하게 됐다. 지난 4년간 김해에서 1명뿐이던 노조원이 불과 보름 만에 30명 가까이가 되었다. 

2018년 1월14일, 김해지회가 설립됐다. 설립과 동시에 해고 저지투쟁에 나섰다. 기자회견, 전단지 배포, 1인 시위 등을 진행했다. 국토부에 질의도 했다. 대리점은 계약파기를 없었던 일로 했다. 뭉쳐서 얻은 첫 승리였다. 

#2 택배기사의 시간
‘1분37초04, 1분28초86, 1분24초78…’ 육상이나 카레이싱 기록이 아니다. 성민씨가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배송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네, 2동에 306호 계시죠? 한 시간 안에 택배 도착합니다.” 

그는 운전 중에도 동선 점검, 반품 송장 확인, 완료 보고, 통화까지 여러 일을 동시에 했다. 물을 마시는 것도, 담배를 피우는 것도 무엇 하나 예외가 아니었다. 모든 행동이 배송시간을 단 몇 초라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 택배기사 김성민씨가 배송 중이다.

올해 마흔다섯 살인 김성민씨는 3년차 택배기사다. 초등학교 1학년 딸과 젖먹이 딸, 두 아이를 둔 아빠기도 하다. 그는 자동차 영업, 대리운전, 공장까지 1년 단위로 이일 저일을 전전했다. 가족들 생계를 챙기기엔 금전적으로 부족한 것이 이유였다. 친척을 통해 택배기사 자리를 알아봤다. 자기만 열심히 하면 네 식구를 책임질 벌이는 될 것 같았다. 

부산 남구 문현동에 사는 그는 아침 6시에는 출발해야 제시간에 CJ 김해B터미널에 도착한다. 노조가 있기 전에는 아침 7시에 시작한 분류작업은 오후 2시를 넘겼다. 자연스레 배송업무가 늦어졌다.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 지친 몸에 겨우 밥 한 숟갈을 들고 이내 잠들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사라졌다. 

노조에서 만든 선전물을 받았다. 분류작업 문제, 특수고용 문제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노조설립 필증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조에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영대 형님이 찾아왔다. 

“니는 노조 가입할래? 어떻게 생각하노?” 
“당연히 가입해야죠.” 바로 가입서를 썼다. 

노조는 분류작업 12시(정오) 종료를 요구하는 투쟁을 했다. 그 결과 지금은 12시면 배송업무를 시작한다. 저녁 8시, 9시에 마치던 일이 이젠 6시쯤 마친다. 가족과 보낼 저녁 시간이 생겼다. “아이랑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거지, 지금도 잘 못 하지만” 자식 이야기에 성민씨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일하는 그에게 가족과 보내는 2시간은 삶에 변화를 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3 뭉치면 주인 된다
“흩어지면 노예 되고, 뭉치면 주인 된다.” 
8월27일 아침 7시 반, 빗소리와 함께 구호가 울려 퍼진다. 이날 CJ 김해B터미널 앞에선 대리점간 수수료 차별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5% 수수료 차이는 월급으로 치면 30~50만 원 차이다. 집회를 마치자 우비를 입은 노조원들이 옹기종기 커피와 떡을 나눠 먹는다. 한 명이 농담조로 툭 던진다. “우리는 뭐만 하면 비가 오네.” 

7월4일, 그날도 비가 왔다. CJ대한통운은 노조원들의 배송물량을 사상터미널로 빼돌렸다. 성민씨는 ‘내 물건 내놔라’고 항의하며 터미널 앞 도로에 드러누웠다. 다른 조합원은 트럭 밑으로 들어갔다. 분류작업 개선 투쟁은 어느새 CJ대한통운에 맞서 노조를 지키는 투쟁으로 변했다. 사측의 배송물량 빼돌리기는 수수료로 먹고사는 택배기사의 생존권을 위협했다. 하루하루 피해가 쌓여갔다. 투쟁이 격렬해졌다. 한 조합원은 사측이 투입한 대체기사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기도 했다. 

영대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오늘이 마지막 투쟁이길 바랐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모두 지쳐갔다. 하루는 조합원 한 명이 울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택배 일 그만하는 거 아냐? 아무래도 다시 못 돌아갈 거 같아. 괜히 노조를 해서.” 

영대씨는 우리가 더 뭉치고 강해져야 더 빨리 끝난다고, 그러니 약해지지 말자고 다독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투쟁 기간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순간이었다. 
 
힘겨운 투쟁이지만 변화가 조금씩 느껴졌다. “힘내세요. 응원하고 있습니다.” “청원에 동의합니다.” 고객들의 격려문자가 왔다. 언론이 움직이고 방송사가 취재를 왔다. CJ의 노조탄압 문제가 널리 알려졌다. 전국적으로 연대의 움직임이 생겼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기사들이 투쟁격려금을 모으기도 했다. 

7월19일, 3주간의 투쟁은 민중당 김종훈 국회의원 중재로 일단락되었다. CJ는 대체배송을 중단하고 조합원들은 현장에 복귀했다. 무엇을 위한 3주였을까? 투쟁은 끝났지만, 그 여운은 아직 남아있다. 허무함, 안도감, 걱정 등 조합원들 사이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택배노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권리를 찾아가는 원초적 힘이지 않을까? 안 그러면 내가 가입하지 않았겠지?”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데리러 가는 성민씨가 답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은 CJ대한통운이라는 거인 앞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닌 택배노조라는 이름으로 함께 뭉치는 걸 택했다는 사실이다.

▲ 전국택배연대노조 김해지회 하영대 부지회장(맨왼쪽)과 김성민 조합원(맨오른쪽) 

김영준 담쟁이 기자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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