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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한국은 정상국가인가?

기사승인 2018.09.10  10: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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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쿼바디스 한미동맹(1)

동아시아 질서가 또 다시 요동치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각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구한말의 격변기, 한국은 식민과 전쟁을 경험했다. 해방 직후의 격변기, 한국은 분단과 전쟁을 경험했다. 놀랍게도, 동아시아 질서가 요동치는 매 격변기에 한국의 선택은 미국이었다. 미국에 의지해 우리의 살길을 도모하고자 했던 노력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과거와 다른 선택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있다. 한미동맹,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저자]

1. 연재를 시작하며: 한국은 정상국가인가?
2.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홍장이 주도한 조선 최초의 근대조약
3. 고종,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 현혹되다
4. 러일전쟁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고종의 망상인가, 미국의 배신인가
5. 맥아더 포고령: 해방군인가 점령군인가
6. 국공내전: 일본과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다
7. 한국전쟁과 미국: “고맙게도 한국전쟁이 터져주었다”
8. 자발적 사대근성과 한미동맹의 실상: “독립국가가 아니군요”
9. 북한의 핵개발과 남북미 삼각관계: 동맹의 존재 이유를 묻다
10. 2017년 한반도 미사일 위기와 한미 동맹: 동맹, 딜레마에 빠지다
11. 쿼바디스 한미동맹: 굳건한 동맹은 더 이상 없다!
12. 나오며: 탈동맹,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길

두 개의 9월8일

▲ 1945년 9월8일 맥아더 포고령(왼쪽), 1951년 9월8일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오른쪽)

9월8일이 있다. 이날,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인천항에 운집한 인천시민들은, ‘질서’와 ‘치안’이라는 미명 아래, 총맞아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강제해산되어야 했다. 그들에게 총격을 가한 이들은, 이미 20여일 전에 항복을 선언했던 일본군이었다. 그렇게 미군이 주둔했고, 그 다음날 즉 9월9일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1945년에 있었던 한반도의 9월8일이다.

또 하나의 9월8일이 있다. 이날 미국의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에 51개국이 모였다. 일부 국가들은 초청을 받았으나 참석하지 않았고, 일부 국가들은 초청을 받지 못했다. 초청을 받고 참가한 국가들 중 48개국은 일본과의 평화조약에 서명을 했고, 초청을 받고 참가하였으나 3개국은 그 조약에 동의하지 않아 서명을 거부했다. 그렇게 일본은 전범국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일본에서의 미군정은 끝났다. 1951년에 있었던 일본의 9월8일이다. 

비록 6년의 시간 차이는 있으나 한반도의 9월8일은 미군정이 시작된 날이고, 일본의 9월8일은 미군정이 끝난 날이다. 한반도에서 미군정의 시작은 한미 동맹의 기원이 되었으나, 일본에서는 미군정의 종료가 미일 동맹의 기원이 되었다. 

이전 시기 침략국과 피해국으로 그 운명이 갈렸던 한국과 일본은 또 다시 운명이 갈렸다. 피해국 한반도는 미군정의 시작과 함께 분단과 전쟁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침략국 일본은 미군정의 종식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을 자양분으로 하여 과거의 정치경제적 지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9월8일은 그렇게 한국과 일본의 경로를 또 다시 뒤집혀 버린 날이었다. 1945년 9월8일 미군 주둔으로 시작된 한국의 경로는 과연 정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간섭과 한국의 이익 사이에서

지난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2019년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NDAA)이 확정되었다. 미국의 국방 정책과 국방 예산을 다루고 있는 국방수권법은 1년을 단위로 하는 한시적 법안이다. 그래서 국방수권법 자체는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국방수권법은 한국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줄이는 대규모의 감축을 추진할 수 없도록 미의회가 제동장치를 건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희한한 것은 2019년 국방수권법이 담고 있는 내용의 적절성에 대한 언급은 한국 내에서 전무하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은 한국 정부와 무관한 것인가. 그래서 미의회가 감축 규모의 상한선을 결정하고 미 행정부가 그 상한선 내에서 미군 감축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권과는 무관한 것인가. 만에 하나 주한미군이 2만2000명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도 충분하다는 한국 정부의 판단이 설 경우, 그래서 한국 정부의 판단과 국방수권법이 충돌할 경우 우리는 우리 정부의 판단보다는 국방수권법에 따르면 되는 것인가. 

최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와 남북 철도 시범 운행이 미국의 반대로 연기되거나 무산되었다. 청와대에서는 “대북 제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현실에서는 미국의 대북 제재가 남북 협력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반대할 만하다”는 평론가적 입장, “한미관계 상 어쩔 수 없다”는 체념적 입장은 난무하지만 미국의 행위를 질타하는 정치인, 고위공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간섭, 그리고 그 결과로서 국가 이익의 침해는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한 것이라는 사고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과연 한국은 정상적인 국가인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조선의 운명을 미국에 의탁하려 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도, 역사적 사실에서도 고종이 기대했던 미국의 ‘선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과 체결한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합법화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미국의 ‘선의’는 없었다. 오직 미국의 이익만이 존재했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선총독에서 미군정이 실시되기 전까지 조선총독부가 38선 이남에 대한 행정권을 유지할 것을 명령했다. 9월8일 일본군이 인천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유이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선총독부의 관리들을 그대로 미군정의 관리로 유임시켰다. 친일 경찰을 중심으로 경찰 조직을 꾸렸고, 관동군을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했다.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의 투쟁이 ‘제주 폭동’이 되고, 제주도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던 여수와 순천에서의 항명 사건은 ‘반란 사건’이 되었다. 자주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당시 민중들의 투쟁은 ‘좌우의 대립’으로 왜곡되었다. 그 결과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구한말과 해방 직후라는 두 차례의 동아시아 격변기에 위정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미국의 ‘선의’를 믿고 미국에 우리의 안보와 이익을 의지하려 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식민과 전쟁, 분단과 전쟁이었다. 그 중심에 한미 관계, 한미 동맹이 있었다. 한미 관계가 우리 외교의 중심에 있었던 시기, 한국은 단 한 번도 정상국가였던 적이 없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동아시아 질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되풀이할 것인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가.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첫 출발점은 한미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있다. 어떤 한미관계를 구축할 것인가. 이제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장창준 정치학박사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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