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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와 조선학교

기사승인 2019.01.30  18: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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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포들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전한 할머니의 당부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사> 기자들이 할머니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지난 12월 남‧북‧해외 공동사진전 ‘평양이 온다’ 개막식 참가와 취재를 위해 서울에 온 조선신보사 기자들이 처음 찾은 곳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평화의우리집’.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거처하고 계신 곳이다. 처음 또는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한 재일동포 기자들이 할머니를 가장 먼저 찾은 이유가 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28일 눈을 감기 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 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 지원도 자신을 대신해 끝까지 해 달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조선신보사 기자들이 평화의우리집을 방문한 날, 할머니는 독한 진통제로 인해 기력이 떨어져 베개에 기대앉으셨다. 함께 자리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이전에 비해 많이 힘들어지셨지만 최근 기력이 조금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와 조선신보사 기자들의 대화가 기록된 메모장을 펴니, 할머니는 그날도 언제나처럼 다부진 말투로 조선학교를 걱정하고 지지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조선학교 이야기를 하냐고 물어. 나도 조선 사람이니까 조선학교 이야기 하는 거지.” “본국에 있는 동포들이 힘을 내야한다. 단결하면 못 할 것이 없다. 단결해서 일본한테 이겨야 한다.” 초중고급 조선학교 그리고 조선대학교에서 우리말과 역사를 배우고, 졸업한 후에 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는 20~30대 기자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듬뿍 담았다.

조선신보사 기자들은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해 9월 오사카를 직접 방문해 고교무상화 항소심 재판에서 패소한 학생들을 만난 것을 떠올리며 “할머니께서 ‘재판에 졌어도 실망하지 말라’고 하셔서 부모님과 아이들이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다음날 할머니는 태풍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를 찾아 격려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또, 입원 중이던 지난해 조선학교를 위해 써달라며 ‘김복동의 희망’에 3000만원, 퇴원 후 2000만원을 기부했다. 일본정부가 ‘고교무상화제도’를 시행하면서 조선학교만 제외하는 등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마음을 썼다.

“조선학교에서 단 한사람이라도 훌륭한 사람을 기르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그게 내 마음처럼 쭉 이어갈 수 있을까… 후원자가 필요하다.”

할머니는 꿈에서도 조선학교에 대한 꿈을 꾼다고 했다. 꿈에서 “조선학교를 이렇게 저렇게 잘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 “꿈이 진실로 돌아와야 한다. 꿈을 길게 오래 품고 있으면 진실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지금도 우리 민족이 일본에서 나라 잃은 슬픔을 받는 한심한 상황이다. 남북이 통일되어 전쟁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 서로가 오갈 수 있는 그런 세상 만들어야 한다.”
“진심을 다해서 기사를 써라.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조선학교를 살려보자.”

할머니의 말씀과 당부를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간 조선신보사 기자들은 펜을 내려놓고 할머니께 다가갔다. 할머니의 손을 잡으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기자들은 “꼭 오래오래 사시라”, “일본에서 열심히 싸우겠다”는 다짐으로 답했다.

30분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기자들이 떠날 채비를 했다. 옆에서 기자들의 질문과 대화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김복동 할머니의 ‘단짝’ 길원옥 할머니가 말했다. “외국에 살고 있느니 아무래도 고향 같지 않고 기가 죽을 런지 모르지만 힘내서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서 우리나라를 다시 잘 세워야지.”

1992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등록한 후 27년간 여성인권평화 운동의 상징이 되어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에 앞장서 온 김복동 할머니. 윤미향 이사장은 할머니가 떠나는 그 날에도 “정부의 생활지원금을 모아 놓으신 전액을 재일 조선학교에 지원해 달라고 하셨고, ‘바른의인상’ 상금 역시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조선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전쟁, 분쟁지역의 아이들과 성폭력 피해자 등을 위한 기부를 계속해왔다. “극심한 통증, 온몸에 암이 퍼져 장기가 기능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빈손으로 떠나면서도 행복해 하셨다.” 윤미향 이사장의 말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행복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을 조선학교 학생들. 할머니는 곧 나비가 되어 조선학교 학생들의 어깨에, 그리고 살아생전 바라던 ‘전쟁 없고, 평화롭고, 통일된 한반도’에 날아오르지 않을까?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1926-2019) 약전]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위안부’로 연행

1948년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 되던 22세에 귀향

1992년 제1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

199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여 증언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 수상

2012년 정대협과 함께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

2015년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천만 원 나비기금에 기부

2017년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선정

2019년 바른의인상 수상, 상금 500만원 재일조선학교를 위해 <김복동의 희망>에 후원


[장례일정]

• 빈소-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실

• 발인- 2월 1일 (금) 오전 6시30분

• 장지- 천안 망향의동산 (하관식 2월 1일 17시)

• 영결식

- 2019년 2월1일(금) 오전 8시30분
집결 장소 : 서울광장 (1호선 시청역 5번출구 부근)

- 2019년 2월 1일 (금) 오전 10시 30분
장소 : 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

• 후원계좌- 국민은행 069101-04-236302 윤미향(김복동시민장장례위원회)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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