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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다음 주 수요일에도 이곳에 계실 겁니다”

기사승인 2019.02.01  16: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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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일본대사관 앞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시민들, 노란나비 물결로 배웅

“김복동 할머니는 전쟁도 이겨내고,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편견도 이겨내고, 폭력적인 문화도 이겨내고, 지금도 딛고 일어서서 전국 곳곳에, 세계 각지에 다시 희망의 나비로 살아나고 있음이 느껴지나요?”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민들에게 물었다. 시민들은 “그렇습니다”라고 한목소리로 답했다.

‘여성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시민장 영결식’이 1일 오전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 사진 : 뉴시스

이른 새벽 발인식에 이어 김 할머니는 생전 마지막 안식처였던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 잠시 머문 뒤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7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만장과 노란나비를 들고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광화문광장을 지나 운구행렬이 도착한 곳은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 김복동 할머니는 안식에 들기 전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마지막 행동에 참석했다.

‘아베는 사죄하라’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나 같은 희생자 다시는 없기를’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살아생전 할머니가 목청껏 외치고 강조했던 말씀과, ‘한일위안부 합의 즉각 철폐’ ‘일본군 성노예 역사교과서 기록’ ‘일본군 성노예 사료관 건립’ ‘통일의 나비가 되어다오’ ‘후대들은 전쟁없는 세상에서’ ‘남북이 하나되어 부강조국 만들자’ 등 할머니와 시민들의 바람이, 할머니의 향년을 상징하는 94개의 만장에 담겨 영결식장을 에워쌌다. 하나둘 늘어난 시민들은 더 큰 노란나비 물결을 만들었다.

“정의롭고 용감했고, 평화를 누구보다 사랑하셨던 김복동 할머니” “여성인권운동가, 역사의 산증인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에 참가한 시민들이 영상과 추모사를 통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살아생전 일본정부를 향해 호통치고, 일본과 미국 등을 찾아 국제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평화의 우리집에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맞으며 ‘먼저 가있어. 내 곧 따라 갈게’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영상에 흐르자 참가자들은 흐느꼈다.

▲ 사진 : 뉴시스

“대장암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이 정도 병은 내가 이긴다. 일본이 사죄할 때 까지 살아야 한다’하시며 그 좋아하시던 담배도 딱 끊으시던 할머니, 고통으로 견딜 수 없어 병원에 입원하던 날, 대통령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한사코 거부하던 진통제를 맞혀달라고 하시며 맑은 정신에 대통령께 ‘일본의 사죄를 받게 해달라’고 똑똑히 이야기하시겠다던 할머니, 그렇게 아팠으면서도 병상에 누워있다가도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 소식이라면 눈을 뜨셨던 할머니, 전신으로 퍼진 암 덩어리가 할머니의 장기를 망가뜨리고 있을 때에도 할머니는 수요시위에 나가셨지요. 그렇게 강하고 강하게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며칠 뒤 응급실에 오셨고, 할머니가 ‘엄마 엄마 너무 아파’라고 하실 때 간호사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손 밖에 잡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권미경 연세대의료원노동조합 위원장이 병상에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도 할머니의 뜻을 이어 일본군 성노예 범죄 사죄, 배상에 앞장서겠다고 인사했다.
“10년 전 쯤, 할머니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재단 앞에 앉아 담담하게 했던 넋두리를 잊지 못합니다. ‘언니야 거기 가니까 편하고 좋나? 나는 너무 힘들다. 속이 썩어 들어간다. 사과 한마디 받기가 이리 힘드나. 언니야, 나도 죽고 싶은데 억울해서 못 죽는다. 죽기 전에 꼭 사죄를 받고 죽을거니까네 언니들은 걱정하지 말고 이제 다 잊어먹고 편안하게 쉬어라…’ 할머니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저 속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할머니, 남아있는 저희들이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법적배상, 역사교육을 이루어서 할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 회장은 노란나비를 들고, 할머니 영정 앞에 꽃잎을 뿌리는 살풀이 공연으로 할머니의 넋을 위로했다.

▲ 사진 : 뉴시스

마지막으로 상임장례위원장인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호상 인사를 전했다. 윤 이사장은 “지난 5일간의 장례기간 동안, 죽음조차도 이겨내고 전국 곳곳에 바람을 일으켜 이 땅을 평화로, 우리의 마음속에 희망으로 할머니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걸 느꼈다. 수천 명이 장례위원이 되어 주셨고, 세계 각지에서 함께 해주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삶을 통해 평화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힘이 약한 사람을, 상처입은 사람을 함께 껴안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렇게 우리는 보고 배우고 느끼고 있다”면서 추모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윤 이사장은 이어 할머니를 대신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들 숫자가 0이 될 때 일본정부가 ‘이제 끝났겠지’라고 안심할 때, ‘천만에! 일본대사는 들어라’라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수천, 수만, 수백만의 나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본 정부는 들어라, 전쟁 범죄자는 들어라, 당장 전쟁을 중단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라, 피해자들의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그렇게 부활하여 목소리를 내주시라”고 호소했다.

영결식 참가자들은 할머니 영전에 헌화하고 노란나비 물결로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잠들어 있는 충남 천안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영면한다.

“다음 주 수요일 김복동 할머니는 반드시 이곳에 앉아계실 것입니다. 평화가 이야기되는 곳에, 인권이 이야기되는 곳에 김복동 할머니는 또 다시 우리에게 준엄한 목소리로, 때로는 격려하는 목소리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 사진 : 뉴시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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