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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식 재벌개혁이 한국에 도입되면?

기사승인 2019.05.15  17: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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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4)]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 사례③ 이스라엘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펼치고 있는 나라들이 경제민주화를 시도한 사례에 대해 알아본다. 미국, 일본에 이어 마지막은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사례다.[편집자]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분리)’와 ‘기업지배구조 개혁’이다. 이스라엘 재벌의 형성과 재벌구조를 통해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금융업을 장악한 이스라엘 재벌

이스라엘의 재벌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세계적으로 밀어닥친 민영화 바람 속에서 국영은행을 민영화하고 이를 재벌들에게 넘겼다. 그 결과 재벌들은 은행까지 소유했다.

2010년 이스라엘 정부가 구성한 ‘경쟁력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20여 년 간의 민영화 결과로 거대한 금산복합 재벌이 등장하고 비은행 금융기관이 성장했다. 재벌들은 비재벌 상장기업들 보다 금융업에 훨씬 많이 진출해 있었다. ‘금산분리’가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이유다.

상위 재벌들 다수가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지배했다. 재벌들은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통해 매우 다각화된 분야에 진출했다. 이스라엘 최대 재벌이었던 ‘IDB그룹’은 이동통신사, 건설사, 슈퍼마켓, 시멘트회사, 보험회사, 여행업, 신문사 등의 분야에 계열사를 거느렸다. 이 재벌계열사들은 피라미드식 출자구조로 총수일가에 의해 지배된다. 한국의 재벌과 유사한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한 가정집을 예로 들면, 재벌기업이 지은 아파트에서 사는 한 가족은 재벌기업에서 만든 휴대폰을 사용하고, 인터넷 서비스와 보험을 이용하며, 이 기업에서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구입한다. 집에서 보는 신문도 재벌계열사에서 만든 신문이다. 역시, 한국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2010년 기준, 이스라엘 6대 상위 그룹의 매출액은 이스라엘 전체 GDP의 25%를 차지했으며, 상장기업 중 26%가 재벌기업 소유다. 상위 10대 재벌그룹의 주가 총액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재벌그룹에 대한 경제집중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이스라엘 재벌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특정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으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스라엘 정부는 “시장의 경쟁과 효율성, 그리고 금융시장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2010년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재벌개혁을 논의한다.

특히 이스라엘 정부는 재벌이 금융회사와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를 크게 우려했다. 자본(재벌)이 소유한 은행을 이용해 경쟁사업자에겐 불리한 조건의 대출을 해주며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재벌이 소유한 신문 등 미디어의 영향력이 과도해지면 결국 국가적·사회적 의사결정이 재벌총수의 이해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과 같은 우려를 예측했다.

‘경제력집중법’ 만장일치 제정

2010년, 당시 우파 정권이었던 이스라엘 정부는 ‘경쟁력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재벌개혁에 나선다. 경쟁력위원회는 ‘금산분리’, ‘기업지배구조’, ‘국공유자산 할당 조건’ 등 세 개의 소위원회로 나눠 경제력집중 현상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등 3년간 재벌개혁을 준비했다.

그 후 2013년 12월 이스라엘 의회에서 재벌개혁 법안인 ‘경제력집중법(경쟁 촉진 및 경제적 집중 억제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경제력집중법은 세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 이스라엘 의회 모습 [사진 : 유튜브 갈무리]

먼저, 금산분리다. 주요 금융기관(자산 112억 달러 초과)과 주요 실물회사(매출·부채 17억 달러)를 동시에 보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스라엘 1,2대 재벌은 금융회사, 비금융회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또 기업규모가 일정수준을 넘어설 경우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둘째, 다단계의 피라미드 구조를 갖는 상장기업은 3단계의 구조를 초과할 수 없으며, 6년이라는 유예를 두고 모든 기업집단(재벌)은 그 기간 안에 2층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도록 했다. 즉, 지주회사와 자회사 구조로 지배구조를 짜야 한다. 신규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2단계 구조만 허용된다. 재벌계열사의 피라미드 출자단계를 규제하고, 문어발식 다단계 계열사를 정리하기 위한 것으로, 무분별한 기업 확장은 불가능하다.

셋째, 공적 자산의 민영화, 공공입찰, 정부 라이센스 취득 등에 ‘경제력집중 우려기관’, 즉 재벌의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이를 평가·승인하는 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스라엘은 또 ‘특수관계인 간 거래의 승인 절차’를 엄격히 해, 재벌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했다. 특정 계열사 또는 관계회사에 ‘일감몰아주기’ 등을 시도할 경우,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주주들의 과반수 승인이 필요하다. 이해관계가 있는 이사는 이사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다. 이사회의 요건과 소액주주권을 강화해 지배주주(재벌)의 전횡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또, 주주들이 이사회의 불법행위 등에 맞서 집단소송을 할 경우엔 정부가 그 소송비용을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회사 및 증권관련 사건만을 전담하는 특별법원을 설치해 기업들의 불법적 행태에 대응하는 사후 규제도 하고 있다.

이렇게 재벌개혁을 시작한 결과, 금산분리법 제정으로 이스라엘 재벌그룹은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IDB그룹은 계열사 ‘크랄보험’을 처분했고, 델렉 그룹도 보험사 ‘피닉스’를 매각했다. 재벌이 장악했던 시장엔 새로운 회사들이 진출해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IDB그룹이 소유한 셀콤 등 재벌계열사만 소유했던 이동통신사 시장엔 새로운 이동통신사들이 나타나면서 통신요금이 절감되는 등 즉각적인 경제효과가 나타났다.

30만 항쟁이 만든 재벌개혁

이렇게 이스라엘이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을 시행하게 된 동력은 이스라엘 국민에게서 나왔다. 정부주도의 재벌개혁 준비가 진행 중이던 2011년 7월,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가 발생한다.

그해 6월, 높은 주택임대료 때문에 살기 어렵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퍼졌다. 코티지치즈 등 기초 식료품에 대한 높은 가격도 문제였다. 많은 가구들이 소득으로 식료품과 주거, 교육과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등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이었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심각한 불평등과 물가상승에 의한 생활고의 원인이 독점적 재벌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중심가에서 텐트를 세우고 숙식을 하면서 시위를 시작했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텐트 시위는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14일부터 6주간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30만 명이 넘었다.

이와 같은 시민들의 저항으로 2012년 이스라엘 총선에서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경제이슈가 가장 중요한 선거이슈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총선결과에도 반영됐다. 다음해인 2013년 12월, 이스라엘 의회가 ‘경제력집중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동력이었다.

▲ 이스라엘 텐트 시위 모습 [사진 : 유튜브 갈무리]

우리나라는 은산분리(은행과 산업 분리)와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분리)를 규제하고 있지만 현재 금산분리가 아닌 은산분리 수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자본이 은행만 소유하지 못할 뿐, 증권이나 보험사 등 제2금융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에서 이스라엘과 같은 재벌개혁 정책이 시행된다면 삼성그룹은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자.

미국과 일본, 이스라엘까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나라들의 경제민주화 사례를 살펴봤다.
2011년 초부터 우리나라에도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쟁이 쏟아져 나왔고, 선거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에 대한 정책공약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재벌개혁의 드라이브는 쉽게 걸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 평가’ 토론회에서 박상인 교수는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나서 경제력집중 문제를 해소했고, 이스라엘은 우파 정권이 나섰고 좌파 의원들이 동의해 재벌개혁 법안을 만들었는데, 우린 최소한의 그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정권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 사례처럼, 재벌에게 집중된 부와 경제력, 그리고 불평등으로 인한 시민들의 저항과 항쟁이 강력한 재벌개혁으로 이어졌다는 것 역시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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