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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인간과 같은 권리를 가지면서 생긴 일

기사승인 2019.07.08  1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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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와 기업집단

대항해 시대, 유럽에서 만든 물건을 싣고 인도로 가서 면화, 차, 후추 등과 바꾸어 오면 투자금액의 100배에 가까운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항해기술이 낙후돼 있어 폭풍, 질병, 해적 등을 만나 원정에 실패하면 투자금은 다 날리고 목숨도 건지기 어려웠다. 리스크가 큰 항해에 참여할 사람과 배를 준비하는 데는 엄청난 자본금이 필요했다. 이러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주식회사와 보험제도가 만들어졌다.

17세기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는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설립됐는데, 주주들은 사업 실패 시 자기들이 투자한 금액(주식)만큼만 유한책임을 지면 주주들이 소유한 다른 자산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동인도회사는 미국까지 진출해 용병 군대와 경찰까지 지휘하며 초기 북미를 사실상 지배했다. 영국 동인도자본은 북미 신생 상인들을 억압하면서 영국의 무역독점권을 행사했다. 이에 식민지 상인들의 저항인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고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프랑스 시민혁명 정신을 이어받아 종교, 국왕 등의 압제에서 국민을 해방하기 위해 천부인권설을 제기했고, 이는 미국 헌법의 골간을 형성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헌법 조문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를 보장하고 이를 위협할 수 있는 동인도회사 같은 기업의 출현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미국 헌법 정신에 따라, 기업은 엄격한 법의 규제 하에서 국민의 종복으로 태어났다.

19세기 미국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는 아래와 같았다.

∙ 기업 설립에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인가 취소
∙ 주요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에 본사를 두고 이사회 개최(현대중공업, 울산)
∙ 부당한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타 기업의 주식 보유 금지
∙ 어떠한 정치자금 기부도 금지
∙ 독점기업의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은 주 의회에서 정할 수 있음
∙ 기업의 모든 기록과 문건은 의회나 주 법무장관에게 공개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덩치가 커진 기업들은 법관과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설득해 인간과 같은 권리를 기업에도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끊임없는 소송을 전개했다. 결국 일부 법관들이 헌법을 재해석하기 시작했고, 기업도 인간과 같은 권리가 있다는 법인격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미국에서, 기업의 숙원이었던 두 가지 제도가 세계 최초로 도입됐다.

먼저,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허용됐다. 이리하여 다른 기업을 소유한 기업집단이 출현했고, 이는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다음으로, 기업을 쪼개고 합치는 것이 허용되고, 동시에 여러 지역에 존재할 수도 있게 됐다. 또한 다국적기업 자회사별로 분리해 법인세를 납부하는 것이 허용됐다. 초기에는 다국적기업 본사 차원에서 계열사 전체의 세금을 납부했으나, 자회사별로 분리 납부가 가능지면서 이전가격 조작(내부거래)과 조세피난처 활용으로 인한 조세회피가 가능해졌다.

기업은 더욱 진화해 법인격을 가지게 됐는데, 기업 스스로 자산을 취득·양도할 수 있고, 소송과 계약의 주체가 되며, 세금의 의무를 진다. 인간의 생은 80세 정도이지만, 기업은 법인을 청산하지 않으면 영속적으로 존속될 수 있다.

▲ 참고사진. 대기업과 그 계열사. [사진 : 뉴시스]

기업집단은 카르텔, 트러스트, 콘체른 등의 형태를 띠며, 이들이 시장에 개입해 독과점과 경제력집중이 발생했다. 카르텔은 중동의 석유기업들 또는 한국의 통신 3사가 독립기업을 유지하면서 물량이나 가격을 담합해 이득을 취하는 방식이다. 트러스트는 기업들이 독립성을 상실하고 하나의 기업으로 합동해 시장을 장악하는 방법이다. 석유왕 록펠러는 40개 석유기업들에게 신탁증권(이익 배당)을 교부하고 경영권을 차지해 기업합동으로 석유 시장을 독점했다. 콘체른은 가장 고도의 기업집중으로 지주회사가 여러 산업의 다수 기업을 지배한다. 자회사들은 형식상으로는 독립성을 유지하나 실제로는 지분소유나 납품구조 등으로 지주회사에 종속돼 있다. 이러한 기업집단, 즉 재벌은 회사법의 모든 이점과 함께 독과점으로 경제권력을 장악해 국가 산업 전체를 좌우하는 힘을 소유하게 됐다.

이러한 기업집단들은 해당 산업의 중소상공인을 몰락시키고 높은 독점가격을 형성해 국민경제에 피해를 준다. 경쟁 기업들이 모두 망하게 되므로 공정한 경쟁은 사라지고 독점의 폐해만 가중된다. 결국 산업은 양극화되고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진다.

자본주의 최첨단을 걷는 미국에서 19세기 말 몇 개의 기업집단에 의해 철도, 정유, 철강, 금융 산업의 90%가 독점화되자, 정부는 반트러스트법, 기업분리명령제 등을 도입해 독점기업을 여러 회사로 분리시키는 등 반독점법(오늘날의 공정거래법)을 만들게 됐다.

세계적으로 공정거래법이 제도화 되었고 전근대적인 독과점을 금지했다. 세계에서 전근대적인 독과점과 경제력집중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뿐이었다. 물론 한국도 공정거래법이 있고 그러한 권한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교묘한 단서조항이나 세칙으로 재벌 독점이 가능하게 문구가 수정되었고, 공정거래위는 많은 불법행위를 방치하고 실제로 재벌들을 제재하지 않는다.

2014년 이스라엘마저 경제력 집중법을 제정해 금산분리, 지주회사 요건강화(2단계까지만 허용) 등으로 재벌개혁을 완료했다. 이제 지주회사가 증손회사까지 거느릴 수 있고, 기존 순환출자가 유지되며, 일감몰아주기 등이 남아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뿐이다.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 minplusnews@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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