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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평양

기사승인 2019.07.13  14: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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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북기 <북중 정상회담하는 날 평양의 하늘은 맑았다>

▲ 6월 18일 아침 출근길 걸음을 재촉하는 평양 시민들. [사진 : 정기성]
▲ 6월 18일 저녁 비가 개인 대동강가. 오른쪽으로 김일성김정일기금빌딩과 조선중앙은행, 평양은행 건물이 보인다. [사진 : 정기성]
▲ 평양의 한 시민이 애완견을 데리고 대동강가를 산책하고 있다. [사진 : 정기성]
▲ 6월 20일 평양 창전거리에는 북중정상회담을 앞두고 ‘조중친선’, ‘불패의 친선’ 등의 문구가 나붙었다. [사진 : 정기성]
▲ 6월 19일 점심 때 찾은 옥류관. 관광객과 평양 시민들로 붐벼 한참을 기다려서야만 했다. [사진 : 정기성]
▲ 모란봉 공원 입구에 서 있는 해방탑. [사진 : 정기성]
▲ 모란봉 대동강 쪽에 서 있는 감찬정. 휴일에는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지만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에는 한가했다. [사진 : 정기성]
▲ 모란봉 감찬정에서 바라다 본 5.1경기장과 릉라인민공원. [사진 : 정기성]
▲ 해방산호텔 커피점의 박은주(왼쪽), 조금이 봉사원. [사진 : 정기성]
▲ 단동행 국제열차가 평양역은 여행객들로 크게 붐볐다. [사진 : 정기성]

5일이나 기다려야 했던 평양행

지난 6월 17일 어렵게 평양에 도착했다. 올 들어 급증한 중국과 동남아 관광객들로 평양행 비행기나 국제열차 표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5일을 더 기다린 후 간신히 중국 심양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이틀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젊은 안내선생이 “올해 가뭄이 들어 평남지방 물 공급에 온 나라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단비가 내린다”라고 말했다.

가뭄해소의 반가움이 앞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기의 행사가 될 시진핑(북에서는 습근평이라고 부른다) 주석의 평양 방문행사가 걱정이 됐다.

“걱정마시라요. 그런 일정은 다 날 잡아 합네다.”

전화기로 날씨를 보니 정말 시진핑 주석이 평양에 도착하는 20일은 화창한 날씨다.“아! 그렇구나. 려명 거리, 미래과학자 거리 등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단 일 년 만에 하나씩 일떠세우는 나라 아닌가.”

다시금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18일 저녁을 먹고 잠시 비가 그친 대동강 강변을 산책했다. 오른쪽으로 최근 연간에 새로 건설된 조선중앙은행과 평양은행 건물이 높게 서 있다. 멀리서 한 여성이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걸어온다. 전국적으로 600만대 가량 보급된 손전화기는 이제 북녘에서도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여성이 보인다. 강가에는 굳은 날씨에도 낚시를 하기 위해 나온 강태공들이 많다. 대부분 은퇴한 분들이란다.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남녀들의 모습도 보이고, 학교교복을 입고 깔깔거리며 웃으며 걸어가는 아이들도 보인다. 평화로운 일상이다.

20일 해방산 호텔 앞의 아침 분위기가 다른 때보다 싱그럽다. 오늘밤 5.1경기장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참가한 가운데 집단체조 공연을 할 텐데, 이리 저리 바쁜 평양의 아침 인민대학습당 주변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손님맞이에 바쁜 사람들처럼만 보인다.

아침에 만난 안내선생이 자랑스럽게 자기 스마트폰으로 시진핑 주석의 기고가 실린 로동신문 기사를 보여준다. 다른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방문하기 전 특별기고를 로동신문에 싣는 경우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시 주석은 개인으로는 2008년 부주석으로 있을 때 방문한 이후 두 번째 방문이지만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방문 이후 14년만의 큰 행사다. 북으로서도 정치적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조중친선’, ‘불패의 친선’

점심을 먹기 위해 옥류관으로 가는 길, 창전거리에는 ‘조중친선’, ‘불패의 친선’ 등 북중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양한 선전문구들이 나붙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옥류관이 휴관이란다. 전날에 왔을 때 중국관광객들이 잔뜩 있어서 입장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한번에 5천명을 수용한다는 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 말처럼 손님들에게 무한의 봉사를 하는 분들이 쉬는 날이라니 아쉬움을 느끼는 것조차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럼 고려호텔로 가자. 고려호텔 냉면은 북에서도 옥류관 다음으로 알아주는 맛이라는 걸 예전 방문했을 때 들은 적도 있었다.

“시진핑 주석이 오늘 온다 해서 어제부터 거리가 분주한 것 같은데, 언제 어느 거리가 차량 통제 되는가?”

가는 길에 ‘운전사 동무’에게 물으니 염려 마시란다. ‘운전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니 어느 거리가 통제되는지 잘 아실 테지.’ 마음을 푹 놓고 이동하는데 갑자기 정면 큰 사거리에서 사이드카 교통보안원들이 도로를 막고 모든 차량을 우측 방향으로만 이동시키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왼쪽으로 갈 수 있는데...”

기사 동무가 난감한 모양이다. 오른쪽을 돌아 쭉 가는데 앞쪽이 차량들로 꽉 막혀 있다. 앞쪽 사거리 근처엔 평양 시민들이 손에손에 조선 국기와 중국 국기, 그리고 흔히 보았던 분홍 빨강으로 된 꽃술들을 들고 모여들고 있었다.

저기로 두 정상의 차량행렬이 지나갈 것이란 생각에 “우리도 좀 기다려 보고 가면 안 됩니까?”라고 물었다. 평양 거리를 지나는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을 직접 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아! 정 선생 그럼 점심도 못 먹습네다.” 안내선생이 차량이 언제 지나갈 지도 모르니 그냥 가잔다.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야 점심 쯤 참을 수 있겠지만 안내선생과 운전기사 동무를 점심까지 거르면서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돌고 꺾고 골목마다 막히는 길을 1등 운전기사 성철 동무 때문에 가뿐히 고려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전기사 성철 동무는 나이가 마흔인데, 1등 기사자격증이 있는 차량사업국에서도 최고참급 운전사란다. 대형트럭, 버스 등 모든 차종의 운전자격증이 있음은 물론 차량고장 시 즉석에서 해결할 수도 있을 정도의 차에 대한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1등 기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주 조용하면서도 성실함이 느껴지는 정겨운 사람이다.

역시 명성에 걸맞게 고려호텔 냉면은 옥류관 냉면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일품이었다. 안내선생의 말로는 옥류관과 고려호텔 두 군데 만큼은 자체 생산기지를 꾸리고 음식재료들을 자체로 보장한다고 한다. 그만큼 냉면에 한해선 전문성을 갖춘 식당들이란다. 아마 그래서 그 맛이 그렇게 독특하게 유지가 되는가 보다.

점심 후에도 다시 환영행렬에 가보고픈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보안상 환영인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미리 확정되는 정도는 그간의 방문을 통해 대강 알고 있던 터라 안내선생을 조르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뒤에 들으니 시진핑 주석은 11시 40분경에 평양공항에 도착해 환영행사를 마치고, 창전거리, 려명거리를 거쳐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갔다고 한다.

한가로운 모란봉 산책

이날 오후에는 모란봉 산책에 나섰다. 아마도 역사적인 북중정상회담이 열리고 있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가급적 한적한 곳으로 안내한 듯하다. 옥류관에서 오른쪽으로 한 500미터쯤 걸어가면 모란봉 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시작된다. 걸어가는데 공원입구에 기동순찰대라고 쓰인 미니밴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다. 아마 시 주석 때문인가 보다. 물어 보니 그렇단다.

공원 입구 왼편에 있는 큰 공터가 한창 공사 중이다. 그 앞쪽에는 청량음료와 간단한 음식들을 파는 매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까까오’(아이스크림을 부르는 북쪽말), 각종 청량음료들을 사 먹고 있었다. 본래 야외극장이었는데 규모를 늘려 대규모 야외공연장을 건설 중이란다.

공원 입구 계단을 올라가자 한국전쟁(북쪽에선 조선전쟁)에서 희생당한 러시아, 옛 소련군병사들을 기리는 기념비인 해방탑이 우뚝 서서 공원에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 모란봉 공원에 같이 위치하고 있지는 않지만 비극적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당한 중국인민지원군 병사들을 기리는 조중우의탑과 함께 해방탑은 공원에 오는 사람들 심장마다에 당시의 준엄한 역사를 다시 깨우쳐 주고 있는 것만 같다. 후에 로동신문을 보니 시 주석은 21일 조중우의탑을 참배하고 헌화했다.

해방탑에서 을밀대까지 대동강변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 모란봉 산책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휴일에는 가족단위로, 직장동료들끼리, 연인끼리 이곳을 찾은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그런데 평일이고, 5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이어진다는 모내기 총동원기간이라 그런지 공원이 매우 한적하다. 또 평양 시민들이 시 주석의 평양 방문과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행사에 나갈 것이다. 사실 공항에 도착하는 하는 날부터 온 나라가 모내기 전투에 참여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모내기에 심혈을 기울인다는데 나만 홀로 편안히 여행을 하는 것도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허락만 해 준다면 모내기 한번 하러 갈 수 없겠냐” 물었더니 “가면 도움은 못 되고 짐만 된다”며 “마음만 받겠다”며 웃는다. 사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청류벽 절벽 위에 있는 정자 난간에 서니 왼편엔 오늘밤 시 주석을 위한 환영행사가 열릴 5.1 경기장이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는 최근에 많이 보도된 려명거리, 창전거리 등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과 평양의 상징인 주체사상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풍경에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말 대동강변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편의 그림 같다.

하루 빨리 남녘의 많은 사람들이 이 청류벽 난간의 정자에 서서 저 아름다운 평양 시내를 바라 볼 수 있게 되길 빌어본다. 그렇게 되면 ‘남쪽에선 정말 대단한 경제와 기술력으로 부를 이루었다면, 북에선 자기들만의 사상과 힘으로 세계 제일대국 미국과 맞서며 70여년의 그 삼엄한 경제봉쇄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 매며 저 아름다운 평양을 건설한 사실에 대해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이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겠는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다

다시 해방산호텔로 돌아 왔다. 해방산호텔에는 커피점이 1층, 2층, 5층, 그리고 8층 맨 꼭대기 만장이라 불리는 곳까지 4군데나 있다. 그 중 규모가 있는 곳은 1층과 8층이다. 그 중에 아무래도 손님들 가기 편리한 1층의 커피점이 제일 크고 또 제일 바쁘다.

각 커피점 마다에는 자신의 일터를 초소라고 생각하고 그런 마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봉사원동무들이 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 10시, 40분, 문을 닫을 시간이다.

“아침 7시 반에 물을 열려면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11시에 끝나니 이제 그만 문 닫을 준비를 하면 안 되냐?”

“일 없습네다. 혹 늦게 찾아오실 지도 모를 손님들을 위해 초소를 잘 지켜야디요.”

일이 있어 먼저 들어간 은주 언니 대신 혼자 일을 보던 금이 동무의 말이다.

이 친구들이 하도 손님들에게 친절해 인기들이 많은지라 손님들이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은동이’, ‘금동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단다. 금동이의 말에 갑자기 쨍하니 뭔가 다가온다. 자기의 일터를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의 초소처럼 생각하는 이 나라 젊은이들의 마음을 엿보아서인가 보다.

이 나라가 미국과 맞서 70여 년의 엄혹한 경제봉쇄 하에서도 이렇듯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고, 또 세계 제일의 집단체조로 불리는 공연들을 창작하는 그 힘이 바로 이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많은 은동이 금동이들이 자기 일터와 나라를 지키는 초소가 된다는 그 ‘초소’의 힘이 아닐까.

해방산호텔 각 커피점에도 이 은동이 금동이들이 있다. 전부 다닐 수가 없어 1층 금동이, 은동이네 커피점과 제일 전망이 좋은 8층 만장 커피점을 주로 이용했다. 8층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은 한산한 터라 조용한 만남엔 좋다.

“종국엔 뜨럼뿌(트럼프 대통령)도 올 거야요”

해방산 호텔을 이용하는 손님들에게 우리 8층도 많이 소개해 달라는 영심, 련희 두 동무와 새로 건설되는 백두산 삼지연호텔에서 근무할 인력을 교육시키느라 수십 명이 와 있는데 비교적 한가한 만장 커피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샛별이란 19살 어린 친구가 있다.

“너희는 이번 북중 수뇌회담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나?”

“습근평 동지가 방문 전에 특별담화를 발표한 것도 역사에 없는 일이지만 현 북미담판의 정세하에 북중 수뇌회담은 아마 미국을 더 압박할 것입네다. 이제 보시라요 인차 뿌찐(푸틴 대통령)도 올 겝니다. 그리고 종국엔 뜨럼뿌(트럼프 대통령)도 올 거야요.“

그리고 곧 이어 밝은 어투로 결론을 짓는다.

“우리 원수님이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서 있습네다.”

영심 동무의 답변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숙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련희 동무는 말이 조용조용한 편이다. 반면 성악가로 활동했다는 영심 동무는 대단히 밝고 쾌활하고 표현에 거침이 없다. 처음에 만장에 갔을 때 몇 마디 주고받고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금방 친숙한 관계가 되도록 사교성이 아주 많은 봉사원 동무다.

평안북도 출신으로 중학교 때 노래실력을 인정받아 인민군협주단에서 운영하는 예술학원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과정을 마치고 인민군 예술단에서 성악가로 활동하였단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살도 찌고 든든했던 몸이 갑자기 살이 빠져서 노래하는 게 힘이 들어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성악가들은 단전으로 노래를 한다니 몸이 일반인들 보다는 좀 더 살도 찌고 배도 좀 나오고 해야 하는데(?) 말라 버리니 노래하는 것이 힘이 들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몸이 말랐는데 남편은 더 좋아해요 뭐 처녀 같다나요. 하하하”

밝게 웃는 영심이의 웃음소리가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는데 헤어지는 날 아침 보니 몸이 아파서 집에 일찍 간다고 내일 까지 쉬어야 할 것 같다며 작별인사를 한다.

“야, 선생님이 안 보이시길래 못 뵙고 가시는 줄 알았습네다”

아프면서도 환하게 밝게 웃어 주던 영심이가 많이 아프지 않아야 할텐데.

다음 볼 땐 결혼 전에 그랬다고 했던 것처럼 더 살이 두둑하게 찐 더 건강해진 영심이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선을 봤는데 언니가 아야 좋아해요 해서 인차 결혼할 거야요.”

영심이가 련희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제 다음에 가면 언제 결혼을 할 지 모른다는 련희를 비롯해 해방산 최고의 ‘입’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유머와 커피경연대회 1등이란 실력을 갖춘 해방산 최고참 ‘은동이’ 은주도 언제 시집을 갈지 모르고, ‘금동이’도 임산휴가를 가고 나면 금희 대신 1층을 관리할 수향이만 남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음에 백두산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늠름하게 삼지연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을 샛별이는 볼 수 있겠다.

평양을 떠날 때는 신의주를 거쳐 단동으로 가는 국제열차를 탔다. 기차편도 만석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며칠 뒤인 6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 문재인 대통령까지 합석하는 3자 회동이 있었다. 반목과 대결의 상징이던 판문점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바뀌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가히 세계평화를 향한 감동의 서사시라 표현을 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그런 감격이 밀려왔다.

모두 한 자매들 같이 정겹게 언니 동생 하며, 그러나 초소를 굳건히 지키는 든든한 동무들로 해방산의 일터와 자기의 나라를 지키고 있을 우리의 딸들이 떠올랐다.

정기성 ‘6.15뉴욕지역위원회’ 부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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